요즘 빠르고 가볍게 쓰고 버려져.. 걸그룹 공항 패션 사진이 대표적
처음엔 일상 궁금해 찍었지만 이젠 브랜드 홍보 수단으로 변해
수없는 폰 화면 터치 속에 사라져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출국장으로 이어진 3층 게이트 앞,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인터넷 연예뉴스 매체 사진기자들과 그보다 더 많은 블로거와 팬들이 줌렌즈를 장착한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검정 밴 한 대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크림색 코트에 선글라스를 끼고 금색 징이 박힌 핸드백을 든 여성이 차에서 내렸다. 신호등 건널목을 건너오는 여자를 향해서 기다리던 카메라 플래시들이 연방 터졌다. 카메라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인 여자는 돌아서서 터미널 입구로 들어갔다. 지나던 여행객들도 몰려들어 신기한 듯 구경했다.
이날 촬영의 대상은 휴가차 미국으로 출국한다는 모 걸그룹 가수였다. 여가수의 출국이 뉴스도 아니었고 홍보하는 신곡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카메라들은 가수의 스타일을 주목했다. 가수가 입은 코트와 핸드백, 선글라스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렇게 공항에서 찍힌 사진은 빠르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갔고 잠시 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로 공유되었다. 공항에서 흔히 보는 연예인 공항 패션 현장이다.
공항 패션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디지털 카메라 기능이 조금씩 좋아지면서 연예인을 쫓던 열성팬들도 전문가용 망원렌즈를 끼운 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로 직접 사진을 찍게 되었다. 유명 스타들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싶었던 팬들은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피곤에 절어 공항에 막 도착한 유명 배우나 아이돌 가수들을 보며 공감했다. 국내에서 스마트폰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2010년경이었다. 페이스북 같은 SNS는 이런 사진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실제로 초기의 연예인 공항 패션 사진들을 찾아보면 외국을 나갔다 입국하는 연예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얼굴을 가리려고 야구 모자를 눌러쓰거나 선글라스에 수수한 청바지나 가벼운 티셔츠 차림으로 자신이 직접 여행 가방을 끌며 들어오다 입국장에서 마주친 카메라에 굳은 표정이 많다. 그러던 것이 공항 사진들이 조금씩 화제가 되고 누구는 공항에서조차 이렇게 멋지더라고 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예인들은 입출국하면서 평범하게 입던 옷맵시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공항에서 배우 현빈이 멘 가방이나 걸그룹 소녀시대가 입은 공항 패션에 주목했다. '연예인의 패션'과 해외로 나가는 '공항'이라는 매력적(?) 공간이 사람들을 더 들뜨고 주목하게 했다. 이런 흐름을 홍보업계가 놓칠 리 없었다. 유명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 사진은 광고 효과가 좋았고, 인천공항 출국장 게이트 앞은 어느덧 아이돌이 패션을 뽐내고 새로 나온 브랜드를 알리는 무대로 변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하재근씨는 "스타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고자 했던 공항 패션은 이제 자연스러운 모습은 사라지고 명품이나 브랜드를 소개하는 이벤트로 변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공항에서 한번 옷을 입거나 걸치고 나가는 데 연예인들은 한 품목당 30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받는다고 했다.
공항 패션과 비슷한 연예인 사진 행사는 많다. 영화 VIP 초청 시사회나 유명 의류 브랜드, 화장품, 액세서리 신상품 등을 소개하는 행사에 예쁘고 한창 인기 있는 배우나 가수들이 초청받는다. 행사 자체는 비공개로 해놓고 포토월(Photo-Wall)이라는 작은 촬영 무대를 설치해서 연예인들은 그곳에서 잠깐씩 사진 포즈를 취한다. 포토월 벽엔 광고하는 업체의 로고가 가득하고 여기서 촬영한 연예인 사진은 온라인으로, 스마트폰으로 노출돼 자연스럽게 광고 효과를 낸다. 유명 브랜드일수록 아무 연예인이나 부르지 않고 이미지에 맞는 스타를 고른다. 인터넷에선 이런 연예인들 사진을 공짜로 볼 수 있지만 실은 공짜가 아닌 셈이다. 한 온라인 매체 기자는 연예인 촬영을 위한 이런 행사는 거의 매일 열린다고 했다.
뒤태를 자랑하는 어느 여자 모델이 거울을 보며 직접 찍었다는 사진 뒤엔 부작용 없는 체중 감량 약 광고가 붙어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16만명을 자랑하는 어느 여배우에겐 유명 패션, 뷰티업체들이 모델이 되어달라고 줄 서 있다. 사람들은 예쁘고 건강한 아이돌 가수나 배우가 나온 공짜 화보를 보면서 광고를 읽기도 한다. 이런 사진들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SNS에는 수없이 널려 있다. 외모에 열광하는 이 시대, 사진이 홍보나 광고에 손쉬운 도구가 됐다. 손가락 끝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면서 사람들은 빠르게 사진을 보고 넘긴다. 넘쳐나는 게 사진이다. 한 장 보는 데 1초도 안 걸린다. 사진이 가볍게 소비되고 빠르게 사라진다. 소비되고 사라지는 사진 속에 무엇이 남을까?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다 옛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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