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에 미치는 힘 과시
북한은 여전히 봉건 왕조 국가
더 많은 숙청 예고하는 신호탄
북한은 이런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김정남의 암살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퍼진 것만으로도 북한 주민들은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김정은의 힘이 지구상 어느 곳에도 파고들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수반이 부하들에게 형의 암살을 명령하는 건 중세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봉건군주제로 작동하는 국가다. 정적을 숙청하고 경쟁자를 귀양보내는 한국 왕조의 역사적 전통이 북한에선 살아 숨쉬는 현실이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과 할아버지 김일성도 잔혹한 숙청으로 북한 전역을 피바다로 만든 전력이 있다. 김정일은 ‘곁가지’ 이복동생 김평일을 이역만리 폴란드와 체코 주재 대사로 쫓아내 평생 북한에 못 돌아오게 만들었다.
한때 김정일을 이을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남은 2001년 위조된 도미니카공화국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했다가 적발됐다. 그는 당시 중국어로 ‘뚱뚱한 곰’이란 뜻의 ‘팡시옹’을 가짜 이름으로 사용했다가 봉변을 당했고 이후 망명자의 삶을 살았다.
2013년 김정남의 고모부 장성택이 사형당한 것부터 김정남에게 불운의 징조였다. 김정일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은 김정남과 가까운 사이였다. 또 젊은 나이에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의 섭정을 맡으며 최고 권력을 누리기도 했다. 김정은이 그런 장성택을 처형한 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면 어떻게 되는지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더 많은 숙청을 강행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북한 관영 언론들은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공민이 숨졌다”고만 보도했을 뿐 김정남의 신원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 고위급 인사들은 그의 암살 소식을 들었을 게 분명하다. 북한을 벗어나 해외에서 15년 넘게 맴돈 김정남은 북한 언론을 탄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북한 고위층과 외교관, 탈북자들은 그를 잘 알고 있다. 김정은이 형을 살해함으로써 “나에게 덤비면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대상은 아마도 이들일 것이다.
김정남의 암살은 북한 지도층이 전례없이 한국에 망명하는 사태와 때맞춰 이뤄졌다. 요즘 탈북 고위급 인사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다. 그는 탈북한 뒤 서울에서 김정은 정권의 실상을 폭로했다. 그의 망명은 북한에는 엄청난 타격이었고, 한국 정부엔 상당한 성공작이었다.
전주 이씨로 태조 이성계의 후손인 필자는 600년 전 펼쳐진 태조와 태종(이방원)의 궁중암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북한에 언론인으로 주재하던 2013년 태조의 고향인 함흥을 찾아 주민들로부터 이성계 가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야사에 따르면 아들들의 골육상쟁에 절망한 태조는 한양의 궁궐을 떠나 고향 함흥에 칩거했다. 태종은 아버지와 만남을 원했지만 태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제발 한양으로 돌아오시라”는 태종의 간청을 전하러 태조를 찾아온 차사들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태조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 절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두고 ‘함흥차사’란 말이 생겼다고 한다.
김정남 살해를 둘러싼 갖가지 미스터리를 보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그가 ‘현대판 함흥차사’가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정남 살해에 대한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기 전까지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남의 죽음은 ‘최고 존엄’(김정은)을 거스르면 어떤 운명이 되는지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경고로 남을 것이다.
진 H 리 전 AP 평양특파원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23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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