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3.22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아랑 귀신에 놀라 죽은 원님들, 따지고 보면 죽을 이유 없어
자기 내면에 깃든 두려움에 스스로 포로 되고 휘둘렸을 뿐
귀 열고 소통하는 위정자에게 불행해지는 장소 있을 수 없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직업은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이란다.
'청와대'라는 장소를 탓하는 풍수학자들도 있다.
지금 청와대 자리가 행복하게 들어갔다 불행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곳이란다.
그런 곳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우리의 옛이야기 속에는 종종 그런 곳이 있었다.
장화홍련전이나 아랑의 전설에 나오는 관아 같은 곳.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에 급제하여 원님이 된 이들이 부임하여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간 곳들이다.
아랑이라는 처자가 있었다. 원님인 아버지가 목숨처럼 아낀 순수한 소녀였다.
달빛 좋은 어느 날 밤 강 좋고 바람 좋은 밀양 영남루에서 휘영청 떠오른 달에 탄성을 보내던 그 소녀를 겁탈하려던
사내가 있었다. 소녀는 원하지 않는 남자에 대해 죽을힘을 다해 저항했으나 힘에 부쳤다.
좋아할 수 없는 남자의 품에 안기는 일은 모욕이어서 그녀는 스스로 목에 칼을 꽂고 죽었다.
뜻을 이루지 못한 괴한은 아예 소녀를 대밭에 던져 상황을 은폐했다. 사내가 아니라 괴물이었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병을 얻어 고향인 한양으로 올라갔다. 후임 부사가 도래했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죽어나왔다. 다른 부사가 부임했다. 그도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왔다.
또 다른 부사가 부임했다. 그도 죽어나왔다.
그 어떤 이도 그곳에 부임하려 하지 않았다. 소문의 힘이었다.
그 점에선 장화홍련전도 구조가 비슷하다. 거기서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억울하고 기막혀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이는 아랑이고 장화인데 왜 죽어간 이는 억울하지도, 기막히지도,
공격당하지도 않은 애먼 부사들이었을까?
아랑 낭자의 전설을 담고 있는 경남 밀양 아랑사.
사진 정면에 신임부사에게 한을 읍소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걸려있다. /조선일보 DB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놀라 죽은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세계가 있는 그대로의 세계일까?
발칙하게도 그것은 스스로 놀라 죽은 원님들처럼 '나'의 관념이 각색한 것이고 거기에 내가 놀아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식적인 영화가 반정부 영화로 보이고, 상식적인 비판을 공격으로 느끼는 것은 그렇게 규정하는 '나'의 두려움,
'나'의 놀람, '나'의 분노가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나'의 관념을 물들이는 그런 정서에 사로잡혀 있는 한 솥뚜껑 보고 자라라 우기며 진실을 외면한다.
그때 심지 굳은 한 남자가 나타났다.
게걸스럽게 정보를 쌓는 공부만 잘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필 힘이 있었던 그는 자청하여 그곳으로 갔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험지를 스스로 찾아간 그는 전임 부사들이 자다가 놀라 죽어갔던 그 밤에 자지 않고 깨어 있었다.
그때 바람이 불고 닫힌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마침내 전임 부사를 놀라게 했을 여인이 등장했다.
목에 칼이 꽂힌 채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복을 입은 젊은 처자. 그녀가 부사 앞으로 걸어왔다. 아랑이었다.
그녀는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이야기, 너무나 억울해서 흘러가지 못하고 맺혀 있는 참담한 이야기를 쏟아냈고,
이 부사는 차분하게 귀를 열고 진지하게 들었다. 소통이었다.
밀양에는 평온이 찾아왔다.
장화와 홍련이나 아랑이 원했던 것은 별것 아니었다. 그저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억울한 사람들의 억울한 모양에 놀라 차분히 상황을 살피지 못하는 원님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억울함을 들어주고 밝혀주는 소통이 별것이 된다.
상대의 모양에 동요하지 않고 침착할 수 있는 힘, 심지다.
심지가 있어야 어려운 상황도 차분하게 살필 수 있고, 차분하게 살피면 그 힘으로 억울함이 풀린다.
바람이 불고 촛불이 꺼지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관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불행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놀라 헛손질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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