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2.0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지난해부터 여러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함께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아 문진(問津)포럼이란 걸 꾸리고 있다. '문진'은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에게 "나루터가 어딘지 물어오라"며 한 말로 '논어'의 미자(微子)편에 나오는 표현이다. 강 건너에 있는 목적지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나루터는 이 시대의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이 꼭 함께 찾아야 할 길목이다.
(각주-학계에 문진(問津)이라는 이름의 포럼이 출범한 것은 이쪽 학문과 저쪽 학문을 연결시켜줄
'나루터'를 찾겠다는 것으로 전공 분야만 파고들다 큰 그림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취지에서다)
최근 정말 진지하게 나루터를 묻는 학문이 있다. 바로 경제학이다. 2007년 미국을 진원으로 하여 일어난 세계금융위기는 경제학을 심각한 주체성의 위기에 빠뜨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제학 대가들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세계경제의 총체적인 붕괴 앞에서 경제학은 학문의 뿌리부터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며칠 전 막을 내린 제40회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도 "더 나은 세계―다시 생각하고, 다시 디자인하고, 다시 건설하자'였으며, 지난 1월 초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의 연례총회에 모인 학자들도 경제학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자고 입을 모았다. "시장이 가장 잘 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시카고 학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동안 경제학은 인간을 지극히 합리적인 동물로 간주하고 모든 이론 모델들을 세워왔다. 하지만 우리가 제법 그런 존재이던가? 불과 몇 푼 싼 기름을 넣겠다고 먼 주유소까지 가느라 돈은 물론 시간까지 허비하며, 재래시장에서는 콩나물값 10원을 깎느라 승강이를 벌이곤 윤리적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면 기꺼이 두둑한 웃돈까지 얹어 사는 게 우리들이다. 경제학이라면 모름지기 경제활동의 주체인 인간이라는 동물의 행동과 본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길을 찾는 경제학이 제일 먼저 진화생물학과 손을 잡았다. 시장을 하나의 적응 현상으로 보는 진화경제학은 30여 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행동경제학에 행동의 메커니즘을 밝혀줄 뇌과학을 접목하고 있다. 또한 세포와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을 분석하는 시스템생물학으로부터 경제구조를 보는 새로운 렌즈를 얻고 있다. 바야흐로 기계론적인 '뉴턴표' 경제학이 물러가고 '다윈표' 경제학이 들어서고 있다. 학문의 통섭(統攝)이 경제학과 더불어 어떤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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