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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62] 축구의 탄생

바람아님 2013. 9. 17. 09:48

(출처-조선일보 2010.06.11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근대 축구는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사립 중·고등학교(public school)에서 탄생했다. 1840~50년대에 학교 개혁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학생들의 폭력성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동시에 규율을 가르치고 용기를 키워주기 위해 축구 경기를 장려했다. 이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계속 공을 찬 덕분에 축구가 널리 보급되었다. 그런데 초기의 축구 경기는 정확한 규칙이 없어서 아주 무질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빨리 통일된 규칙을 제정할 필요가 있었다. 1848년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작성된 '케임브리지 규칙'이 이후의 축구 발전에 모델이 되었고, 1863년에는 축구협회가 결성되어 여러 차례의 모임 끝에 드디어 완성된 경기 규칙을 마련했다. 이 협회의 규칙에 따른다는 의미에서 축구의 공식 이름은 어소시에이션 풋볼(Association football)이 되었고, 어소시에이션이라는 단어 중 일부(-soc-)를 따서 사커(soccer)라는 별칭도 만들어졌다.

사실 이 당시 풋볼은 두 종류로 발전하고 있었다. 하나는 손을 사용하지 않고 해킹(hacking·상대 선수의 발을 차는 행위)을 금하는 드리블링 게임(dribbling game)으로서, 이것이 오늘날의 축구로 발전했다. 다른 하나는 손을 사용하고 폭력적인 행위에 조금 더 관대한 핸들링 게임(handling game)으로서, 이것은 럭비풋볼로 발전했다. 럭비는 1871년에 별도의 협회가 만들어져서 독립해 나갔다.

1870~80년대부터는 노동자들이 축구를 즐겨 하게 되었는데, 노동자들의 음주를 줄이려고 노력했던 교회와 사업주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즈음에는 이미 돈을 받고 경기를 하는 프로 선수들이 생겨났고, 전용 구장을 가진 축구 클럽들도 여럿 생겨났다. 토요일에는 오후 한 시까지만 일하는 것이 관례가 된 후 토요일 오후 3시에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축구 경기가 열렸다. 19세기 말이면 여름에는 크리켓, 겨울에는 축구가 영국의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1870~71년부터 개최된 FA컵 대회의 결승전이 열리는 4월이면 10만명의 군중이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모여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축구는 20세기에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계인의 스포츠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