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도 학력도 고향도 안 보고 뽑습니다. 이름하여 블라인드 채용이다. 사진, 출신대, 전공, 학점, 고향, 가족관계, 신체조건…. 이달부터 공공기관, 공기업(공공기관 332개, 지방공기업 149개) 입사지원서에서 이런 내용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조선, 2017. 7.6)
고용노동부는 행정자치부, 인사혁신처와 공동으로 마련한 '공공 부문 블라인드 채용 추진 방안'이라는 것을 지난 5일 발표했다. 면접 때도 지원자의 인적 정보를 제공받지 않은 상태에서 블라인드 면접을 실시한다. 이건 문재인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이력서에 학벌,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등 차별적 요인을 기재하지 않도록 추진하라"고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입사지원서에 사진 부착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장차 민간 기업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하니 귀가 의심스럽다.
많은 국민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옛부터 사람의 평가는 신언서판(身言書判)으로 해왔다. 선거지(選擧志)에 나오는 이 말은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몸[體貌] 말씨[言辯] 글씨[書跡] 판단[文理]을 이르는 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물평가의 잣대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한다.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첫째 평가 기준은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풍위(風偉)가 제대로 갖춰있지 못하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가리킨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말에 조리가 없고 표현력이 부족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말에는 변정(辯正)이 있어야 한다. 서(書)는 글씨를 의미하고 특히 옛날에는 필적이 대단히 중요했다. 서에는 준미(遵美)가 있어야 한다. 판(判)이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한다. 설령 체모가 뛰어나고 언변이 좋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능력이 없으면 출중한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 인재에게는 문리의 우장(優長)함이 있어야 된다.
좋은 인재를 골라 쓰려면 눈을 크게 뜨고(with one's eyes wide open) 사람 됨됨이를 관찰하고 평가해도 모자랄 터인데, 있는 자료 모두 버리고 눈을 감고(blind) 뽑겠다니 천상천하 이런 엉터리 전형이 어디 있을까. 물론 필자 역시 학벌 위주 사회를 비판한다. 대학의 서열화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좋은 대학 출신이 반드시 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서울대 나온 게 무슨 죄라고 학교이름과 전공, 학점까지 감춰야 하는가.
도대체 블라인드 채용을 영자신문은 어떻게 쓰고 있을까? 어떤 인사관리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용어를 4가지로 쓰고 있다. 1) blind hiring system 2) blind recruitment system 3) blind screening system 4) blind employment system 등이다. 뉘앙스에 차이는 있지만 외국인들이 보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똑같은 콩글리시다. 이 제도의 목표는 나이, 성별, 키, 체중, 혈액형, 결혼여부 등 차별적 요인을 지원서에 쓰든가 면접 시 묻지 말도록(about possible discriminatory factors such as age, gender, height, weight, blood type and even marital status in the application or in interviews)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 직업이나 생활 수준도 비밀이다. 오직 직무 관련 능력(job skills and abilities)만 보겠다는 것인데, 있는 중요 정보를 다 버리고 무슨 수로 직무능력을 찾아 낼 수 있을까. 그야말로 주관적인 면접, 곧 '관상'이 당락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지역인재 30% 할당제도' 역시 논란이 많다. 이 판에 황당한 이 제도까지 시행된다면, 우리 젊은이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갈 필요가 없게 된다. 설령 들어가도 좋은 학점 따려고 밤세워 공부할 필요가 없다. 해외연수나 봉사활동, 인턴경험도 쓸데 없는 짓이고 영어나 외국어 능력도 무용지물이다. 취준생은 오로지 면접 훈련에 힘쓰고 외모나 잘 가꾸면서 당일 컨디션 조절에 힘써야 한다.
인생은 그저 한 방 운(運)임을 가르치는 사회는 비극이다. 동기(motivation)부여가 없는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공정하다는 것은 불평등의 원리다. 능력 있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대우받게 될 때 국가는 성공한다. 그럴바엔 차라리 모든 채용을 제비뽑기로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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