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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뮬리 인생샷 아직도 없니?"..관광객 욕심으로 짓밟힌 분홍 억새

바람아님 2017. 10. 26. 09:14
아시아경제 2017.10.25. 11:21
26일 오후 경북 경주 동부사적지를 찾은 관광객이 억새의 일종인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문수빈 기자] 깊어가는 가을 ‘분홍 억새’ 를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억새 관광지가 몸살을 앓고 있다. 분홍 억새는 서양 억새의 일종인 ‘핑크 뮬리’다.


이 핑크 뮬리는 억새의 고유한 갈색 잎 등 외관이 아닌 전체가 분홍색을 띠고 있다. 특히 바람이 불 때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소셜네트워크(SNS)에서 인기가 좋다. 핑크 뮬리의 인기를 입증이라도 하듯 25일 오전 10시 기준 인스타그램에는 ‘핑크 뮬리’ 게시물만 10만 건이 넘는다. 이 게시물은 하나 같이 “#인생샷, #핑크 뮬리”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소위 ‘인생샷’을 찍으려고 억새 군락지에 몰리는 사람들로 인해 파괴되는 관광지다.

국내에서 핑크 뮬리 4대 성지로 꼽히는 경기도 양주 나리공원, 부산 대저생태공원, 구미 낙동강 체육공원, 경주 첨성대 주변은 관광객들의 삐뚤어진 애정으로 골치를 썩고 있다.


이날 핑크 뮬리 관광지 관계자들은 포토존을 설치했음에도 핑크 뮬리를 밟고 들어가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증가해 억새가 망가지고 자라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관계자들은 진입 금지 푯말을 약 2배가량 증가시키고 최근에는 주말에도 관리인을 상주시켜 관리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경주 첨성대 사적지 정비팀은 “억새 사이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에 제재를 가할 때 미안해하는 관광객도 있지만, ‘앞사람도 들어가 찍었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라며 “한 컷의 사진을 위해서 핑크 뮬리를 밟으며 사진 찍는 관광객들을 보면 속상하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경북 경주 동부사적지를 찾은 관광객이 억새의 일종인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사정은 경기도 양주 나리 공원도 마찬가지다. 주말엔 최대 7만명이 방문하는 체험 관광농원의 관계자는 “들어가서 찍는 분들에겐 호각까지 불며 주의를 줬다. 그렇게 해도 ‘사진 찍으러 와서 꼭 사진을 찍고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다”라며 “핑크 뮬리를 낫으로 베간 흔적도 봤다”고 전했다.


문제는 그뿐만 아니다. 핑크 뮬리를 보기 위해 나리 공원에 방문한 한 시민은 “공원 근처 나들목으로 가는 데 2시간이나 걸렸다”며 “관광객들이 주변 지역에 불법 주차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8월 나리 공원 방문객은 10만명이었으나, 9월에 100만명으로 급증했다. 해당 관계자는 “현재 주차장 확보가 힘든 상태”라며 “주말에 이와 관련한 민원도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 공원 관계자는 “핑크 뮬리는 다른 억새와 달리 밟으면 다시 살아나기 어려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관광객들의 사진 욕심으로 (망가졌다)”라며 “내년부터는 특별관리를 해야겠다고 절실히 느꼈다”고 전했다.


문수빈 기자 soobin_22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