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데스크에서] '승자 독식'의 노래

바람아님 2017. 11. 19. 09:30
조선일보 2017.11.18. 03:10
이한수 여론독자부 차장

어쩔 수 없다. 승자 독식이다. '더 위너 테익스 잇 올(The Winner Takes It All)'이다. 스웨덴 음악 그룹 아바(ABBA)가 1980년 노래했다. 이긴 자가 다 갖는 거라고. 노래 가사는 이렇다. '우리가 겪어온 지난 일에 대해 나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비록 그것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할지라도/ 이제는 지나간 역사일 뿐이죠/ (중략) / 승자는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는 초라하게 서 있을 뿐이죠.'


며칠 전 신문에 실린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 사진을 보고 깨달았다. 그렇구나. '더 위너 테익스 잇 올'이구나. 사진 일부를 흐릿하게 처리했으나 김 전 실장은 오랏줄에 몸이 감기고 두 손이 묶인 모습이었다. 지난 10년간 합참의장·국방장관·안보실장으로 대한민국 안보를 정점에서 책임진 이를 그렇게 초라하게 세워놓았다.


사익(私益)을 위해 공직(公職)을 이용했다면 누구라도 벌을 받아야 한다. 만일 부하 직원에게 댓글을 달게 하여 개인 재산을 두 배로 불렸다면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아 적(敵)과 내통했다면 구속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권을 지지하는 댓글을 써서 여론을 조작하려 했다'는 혐의가 전 정부 안보 수장을 감옥에 집어넣을 만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댓글 공작과 청와대 상납 혐의로 전 정부 국정원장 셋을 줄줄이 잡아들이는 일이 오로지 불공정 특권 구조를 바꾸려는 충정에서 나온 것인지 잘 모르겠다. 선거라는 게임에서 진 쪽에 있었다는 이유로 초라하게 서 있어야 한다면 우리는 1980년대 유행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섯 달 전 당내 경선 때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댓글과 문자 폭탄을 '양념'이라고 했다. 엊그제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생일(11월 15일)을 맞아 '사랑해요 김정숙'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만들자고 한 지지자들의 행위도 그저 '양념'일 뿐이다. 이를 여론 조작이라고 하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3년 전 신문 칼럼에서 '현재 여권의 지지율은 여권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권이 못해서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고대 로마의 개선장군 뒤에서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Memento mori·메멘토 모리)"고 외치는 노예 이야기를 통해 권력은 영원하지 않으니 경거망동을 삼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아바가 부른 '더 위너 테익스 잇 올'은 슬픈 노래다. 사랑을 빼앗긴 여인이 '어쩔 수 없다. 이긴 자가 다 갖는 거니까'라고 자조하는 내용이다. 사랑을 되찾을 때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복수심도 깔려 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을 보며 자조하면서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훗날을 기약할 것이다. 되풀이되는 슬픈 노래에 국민도 뛰어들어 함께 부르며 편 갈라 싸울 것이다. 정치의 책임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