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96] 나그네비둘기

바람아님 2013. 10. 30. 23:02

(출처-조선일보 2011.02.0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17~19세기에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개체 수가 많은 새는 나그네비둘기(passenger pigeon, 여행비둘기라고도 한다)였다.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이 새가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1854년 뉴욕주의 웨인군에서는 "며칠씩이나 새들로 하늘이 뒤덮일 때가 있고, 새떼가 안 보이는 시간은 반나절도 안 되었다." 하늘을 덮은 이 새떼의 무리는 1.6㎞ 폭에 길이가 500㎞에 이르기도 했다. 나무 한 그루에 심지어 백 개 가까운 새 둥지가 만들어졌다가 그 무게 때문에 가지가 부러지거나 뿌리가 뽑히기도 했다. 새떼를 향해 총을 한 발 쏘면 30~40마리가 떨어졌고, 언덕에서 나뭇조각만 던져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인디언들은 막대기로 이 새들을 때려잡았고 따라나선 아이들도 새 모가지를 쉽게 비틀어 잡았다고 한다. 한창때에 이 새는 10조마리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생태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아마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도래한 이후 생태계를 교란시킨 결과 이런 비정상적 현상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론한다. 그 이전에는 이 새가 다른 종들과 적절한 균형 상태에 있었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생태계가 통제력을 상실한 후 미친 듯이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가능성 큰 가설 중 하나는 기술적으로 불을 지르며 숲을 다스리던 인디언들이 몰락하자 생태계의 변화가 유발되었다는 것이다.

나그네비둘기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만큼이나 이 새가 급격히 사라져간 것도 극적인 일이다. 19세기에 이 새는 대량 포획의 대상이 되었다. 사냥꾼들과 상인들이 회사를 만들어 대도시에 새고기를 공급했다. 이것은 노예들과 빈민들의 식량으로 많이 쓰였다. 1870년대 이후 하루에 20만마리 이상을 잡는 남획이 지속되자 그 많던 새들이 사라져 갔다. 드디어 1914년 9월 1일, 미국의 신시내티동물원에서 '마사(Martha)'라 불리던 마지막 나그네비둘기가 죽음으로써 이 새는 지구상에서 영구히 사라졌다.

연초부터 새들이 떼죽음을 당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새들의 서식지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된다고 한다. 암만해도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게 너무 큰 폐를 끼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