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8.3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중의 하나로 정현종 시인이 쓴 '섬'이라는 시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문학평론가들은 대체로 이 시에서 '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이어줄 수 있는 이상적인 소통의 공간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스스로 최승호 시인이 말하는 '특별히 눈 밝은 독자'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나름대로 이 시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시인은 일단 사람들이 각각의 섬이라는 형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말은 물의 단절을 넘어 섬과 섬을 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표현일 것이다. 사람들이 좀 더 자기 마음의 외연을 넓혀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닿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섬'은 면적이 정해진 붙박이 섬이 아니라 한없이 넓어질 수 있는 우리 인간의 마음 그 자체를 상징한다.
2009년 2월 출간되자마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철학과 교수 알바 노에의 '뇌과학의 함정'에는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소제목의 글이 있다. 그는 의식이란 결코 뇌세포들의 단독 공연이 아니라 뇌·몸·환경이 함께 연출하는 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마음은 삶"이라고 단언한다. 삶은 습관이며 습관은 세계를 필요로 한다. 세계는 결코 뇌 안에서 만들어지거나 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나 fMRI(기능성자기공명영상) 등의 뇌 영상 촬영만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뇌와 환경의 역동적 관계, 즉 '습관의 생태학'을 연구해야 한다.
2010년 7월 2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는 네덜란드 뇌과학자들의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예컨대 손가락을 움직여야겠다는 의식적 판단 이전에 상당한 무의식 작용들이 선행된다는 것이다. 자연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그의 저서 '자유는 진화한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해석을 통해 세계를 확보하지 않는다. 해석은 우리가 세계를 손에 넣은 뒤에 온다." 춤을 근육으로 설명할 수 없듯이 마음을 세포로만 설명할 순 없다. 바야흐로 뇌과학은 데카르트와 헤어져 스피노자와 다윈을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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