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9.06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행동생태학)
2006년 3월 16일 시사주간지 '타임'은 21세기가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단한 창의와 혁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옛날 우리의 조상은 날카로운 돌을 주워 동물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구한 날 날카로운 돌들이 주변에 흐드러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내 돌의 면을 날카롭게 만드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우리 인간은 존재 역사 내내 끊임없이 창의와 혁신을 추구한 동물이었다.
지금까지 혁신의 주체는 극소수의 천재 또는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주체가 극소수에서 엄청난 다수로 넘어갔다는 것이 '타임'의 주장이다. 그동안 사람들의 아이디어는 대체로 포장마차에서 술과 함께 사라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든 웬만큼만 다듬어진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걸 구현해주는 메커니즘이 컴퓨터 안에 마련되어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천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창의성은 정의하기 매우 까다로운 개념이다.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교육에 의해 길러질 수 있는 것인지를 두고 참으로 많은 논쟁이 있었다. '아인슈타인, 피카소: 현대를 만든 두 천재'의 저자 아서 밀러는 창의성이란 통합적 사고와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은 각기 예술과 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시각적 상상력에서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이 천재성을 발휘하기에 이른 과정은 무척 다르다. 이들을 만일 야구선수로 비유한다면 아인슈타인은 타율과는 상관없이 어느 날 드디어 장외홈런을 때린 사람이고, 피카소는 수없이 많은 단타를 치다 보니 심심찮게 홈런도 때렸고 그 중의 몇 개가 만루홈런이 된 것이다. 피카소는 평생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는 평범한 것들도 많았으나 워낙 많이 그리다 보니 남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수작을 남기게 된 것이다.
나는 섬광처럼 빛나는 천재성보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더 소중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기린의 목은 아무리 잡아 늘여도 길어지지 않지만 배움의 키는 끊임없이 큰다. 신기하게도 키는 조금만 커져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홀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스스로 아인슈타인이 못 된다고 실망하지 말자. 부지런히 뛰다 보면 앞서가는 피카소의 등이 보일 것이다.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99] 로마의 온돌 (0) | 2013.11.04 |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98] 세계사 속의 한국 (0) | 2013.11.02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97] 수에즈 위기 (0) | 2013.11.01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74] 마음의 뇌과학 (0) | 2013.11.01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96] 나그네비둘기 (0) | 2013.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