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일본 여행을 하며 절실히 느낀 점은 다다미방에서 자는 것이 무척 춥다는 것이다. 뜨뜻한 온돌방에서 등을 '지지며' 잘 수 있는 우리 한옥이 새삼 사무치게 그리웠다.
사실 겨울 추위가 심한 지방에서 난방 문제는 늘 풀기 어려운 난제였다. 온돌은 조리도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사람의 몸을 가장 따뜻하게 해 주는 최상의 해결책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온돌은 분명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중 하나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도 우리의 온돌과 유사한 난방 시스템이 전혀 없지는 않다. 고대 로마의 히포카우스툼(hypocaustum, 영어로는 hypocaust)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것은 땅에 작은 돌기둥들을 쌓고 그 위에 방바닥을 설치하여 방 밑에 빈 공간이 생기게 만들어 놓고, 아궁이에 불을 때면 뜨겁게 달구어진 공기와 연기가 그곳을 지나며 방을 달구는 방식이다. 즉, 온돌과 전적으로 같은 원리다. 많은 고대 로마 유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 지하에 로마 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곳에 가 보면 이런 '로마식 온돌'을 직접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온돌과의 차이는, 온돌이 작은 방을 덥히는 정도의 소규모인 데 비해 로마의 히포카우스툼은 공중목욕탕처럼 큰 시설에 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일설에 의하면 세르기우스 오라타라는 재주 많은 상인이 이 시설을 발명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가 주택을 사들여 히포카우스툼을 설치해서 부동산 가치를 높인 후 되팔아 이익을 취한 것은 맞지만 그가 과연 이 시설을 최초로 발명했는지는 불명확하다.
로마 시대가 끝나면서 히포카우스툼도 사라지고 그와 함께 따뜻한 난방시설과 목욕탕도 사라졌다. 유럽에 중앙난방 방식이 등장하는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그전에는 귀족이나 평민 모두 겨울 추위에 시달리며 살았다.
중세사 교과서에 의하면 성 안의 추운 방에서 덜덜 떨며 살던 귀족보다는 밤에 돼지를 껴안고 자던 농민들이 더 따뜻하게 겨울을 났으리라고 한다. 그들이 온돌에서 온몸을 지지며 자는 우리 조상들을 봤으면 꽤나 부러워했을 것 같다.
(출처-조선일보 2011.02.2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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