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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00] 소주

바람아님 2013. 11. 6. 10:30

(출처-조선일보 2011.03.04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소주'라는 말은 '태워서 얻은 술'이라는 의미이다. 옛 문헌에는 '燒酒'라고 썼는데, 최근에는 술 주(酒)자 대신 소주 주(酎)자를 써서 '燒酎'라 표기한다. 이 글자는 근대에 일본이 만들어낸 신제 한자이다.

'태운다'는 것은 증류(蒸溜)를 의미한다. 곡물이나 과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킨 술, 곧 막걸리·포도주·맥주 등은 양조주(釀造酒)이고, 이것을 증류하여 도수를 높이면 위스키나 보드카 같은 증류주가 된다. 안동소주나 개성소주 같은 전통 소주가 증류주에 속한다. 이것을 여러 번 더 증류하면 순수 알코올에 가까운 주정(酒精·spirit)을 얻는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공장 제조 소주는 주정에 물을 타서 도수를 조정한 후 향신료를 첨가한 혼성주(混成酒) 혹은 재제주(再製酒)에 속한다. 물을 타서 만들었기 때문에 희석식 소주라고도 칭한다.

증류는 상당한 정도의 기술 발전을 전제로 한 것이며, 따라서 소주와 같은 증류주는 문명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술이었다. 유럽에서 증류기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포도주를 증류하여 브랜디(brandy혹은 gebrannt Wein)를 만든 것은 대체로 1100년경 남부 이탈리아의 살레르노대학에서 있었던 일로 거론된다. 처음에 브랜디는 치료약으로 사용되었으나 곧 약국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증류기를 가리키는 알람빅(alambic)이라는 아랍식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아랍 과학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소주 제조기법도 마찬가지이다. 아랍권에서 증류주를 아락(arag, arak)이라 부르는데, 이 말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개성지방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 칭하며,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소주를 골 때 풍기는 냄새를 '아라기' 냄새, 소주를 고고 남은 찌꺼기를 '아라기'라 부르는 것이 그런 사례이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소비된 소주는 33억 병에 가까운데 이는 성인 1인당 평균 80병이 넘는 엄청난 양이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여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니 소주를 과음하다 죽었다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계속 '소주 권하는 사회'였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