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라는 말은 '태워서 얻은 술'이라는 의미이다. 옛 문헌에는 '燒酒'라고 썼는데, 최근에는 술 주(酒)자 대신 소주 주(酎)자를 써서 '燒酎'라 표기한다. 이 글자는 근대에 일본이 만들어낸 신제 한자이다.
'태운다'는 것은 증류(蒸溜)를 의미한다. 곡물이나 과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킨 술, 곧 막걸리·포도주·맥주 등은 양조주(釀造酒)이고, 이것을 증류하여 도수를 높이면 위스키나 보드카 같은 증류주가 된다. 안동소주나 개성소주 같은 전통 소주가 증류주에 속한다. 이것을 여러 번 더 증류하면 순수 알코올에 가까운 주정(酒精·spirit)을 얻는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공장 제조 소주는 주정에 물을 타서 도수를 조정한 후 향신료를 첨가한 혼성주(混成酒) 혹은 재제주(再製酒)에 속한다. 물을 타서 만들었기 때문에 희석식 소주라고도 칭한다.
증류는 상당한 정도의 기술 발전을 전제로 한 것이며, 따라서 소주와 같은 증류주는 문명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술이었다. 유럽에서 증류기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포도주를 증류하여 브랜디(brandy혹은 gebrannt Wein)를 만든 것은 대체로 1100년경 남부 이탈리아의 살레르노대학에서 있었던 일로 거론된다. 처음에 브랜디는 치료약으로 사용되었으나 곧 약국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증류기를 가리키는 알람빅(alambic)이라는 아랍식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아랍 과학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소주 제조기법도 마찬가지이다. 아랍권에서 증류주를 아락(arag, arak)이라 부르는데, 이 말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개성지방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 칭하며,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소주를 골 때 풍기는 냄새를 '아라기' 냄새, 소주를 고고 남은 찌꺼기를 '아라기'라 부르는 것이 그런 사례이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소비된 소주는 33억 병에 가까운데 이는 성인 1인당 평균 80병이 넘는 엄청난 양이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여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니 소주를 과음하다 죽었다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계속 '소주 권하는 사회'였던 모양이다.
(출처-조선일보 2011.03.04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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