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2011.05.20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사)
백년 만의 폭우로 미시시피강 수위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홍수 위험이 대두되었다. 루이지애나 주 당국은 하류의 배턴루지와 뉴올리언스 같은 대도시가 물에 잠기고 정유시설이 큰 피해를 입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모간자 방수로의 수문을 열어 물길을 서쪽으로 돌렸다. 동쪽의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서쪽을 희생시키는 '악마의 선택'을 한 셈이다.
미시시피강의 치수 작업은 18세기부터 미국 엔지니어들의 주요 과제였다. 누구는 강에 제방을 쌓는 동시에 수문과 저수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고, 누구는 제방과 함께 방파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1879년에 미국 의회에서 구성한 미시시피강 위원회는 다른 시설 없이 단순한 제방을 쌓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앤드루 험프리즈의 안을 채택했다. 제방을 쌓으면 강물의 유속이 빨라져서 강물이 바닥을 파내므로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그렇게 하자 강바닥을 파내는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수위만 높아졌다.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계속 높이 쌓은 결과 1920년대에는 제방 높이가 13m에 이르렀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비를 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이 예상은 1927년 봄의 대홍수 때 보기 좋게 빗나갔다. 4월 14일에 그린빌의 제방이 무너져서 나이아가라 폭포 수량의 두 배가 넘는 물이 넘쳐났다. 그 후에도 수위가 계속 높아져서 남쪽의 빅스버그, 배턴루지, 뉴올리언스 등이 위험에 빠졌다. 강제 징집한 흑인 노동자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수십만 개의 모래주머니를 쌓아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드디어 4월 29일, 세인트버나드와 플라커민즈 지방의 제방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여 물길을 돌렸다. 최초로 '악마의 선택'을 한 이날, 탄탄한 제방으로 물길을 통제한다는 미국 엔지니어들의 오랜 신조는 막을 내렸다.
그 후 벌어진 일들 역시 공평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백인 이재민들은 당국이 징발한 호텔에서 자면서 적십자사가 제공하는 음식을 받았지만, 흑인들은 화장실도 없는 텐트촌에서 축축한 맨바닥에서 잤고 강제노동을 하는 대가로 불충분한 식량을 받았다. 총검을 지닌 군인들이 흑인들을 감시했고, 악명 높은 KKK단이 린치를 가하기도 했다. 미국 사회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고, 때로 악마적인 방식으로 약자들을 희생시킨다는 사실을 미시시피강은 웅변으로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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