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1.05.27.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사)
물의 확보는 역사상 언제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예컨대 고대에 예루살렘이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교역의 십자로 상에 위치해 있는 데다가 물 공급을 확실하게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주요 수원지는 성벽 바로 바깥에 있는 기혼샘이다. 히브리인 이전에 이곳을 지배했던 여부스인은 포위당했을 때에 대비하여 이 샘에 이르는 360미터 길이의 지하 비밀 터널을 파두었다. 기원전 1000년경 다윗왕이 이 도시를 지배한 후 가장 크게 신경을 쓴 문제 역시 물 확보였다. 다윗의 후계자인 솔로몬은 시외에 세 개의 커다란 저수지를 파고 시내에는 빗물을 모아두는 탱크를 설치하여 안전한 물 공급을 도모했다. 후대의 히스기아왕은 더 나아가서 기혼샘으로부터 시내의 저수지로 물을 공급하는 지하 비밀 터널을 뚫도록 명령했다. 깎아지른 듯한 암반에 정확한 경사로 판 길이 550미터의 S자형 터널은 오늘날까지 2700년 동안 거의 중단 없이 물을 공급했다. 그 후 아시리아의 대군이 이 지역에 밀려왔을 때 다른 모든 도시들이 항복했을 때도 예루살렘만은 버틸 수 있었던 것 역시 안전한 물 공급 덕분이었다.
오늘날에는 물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하게 되었다. 현재 물 사용량의 증가 속도는 세계 인구 증가보다 두 배 이상 빠르다. 20세기 동안 세계의 물 사용량이 9배 늘어났는데, 이는 에너지 사용량이 13배 늘어난 것에 필적할만한 일이다. 세계 인구가 60억에서 90억으로 향해 가고 있고, 도처에 인구 과밀 지역들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깨끗한 물 공급은 갈수록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 생산적으로 수자원을 이용하여 싸고 풍부하게 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선진국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에는 국내외적으로 물 유산계급과 물 무산계급 간 갈등이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20세기가 석유 자원에 대한 갈등의 역사였다면, 21세기는 물에 대한 투쟁이 각국의 명운을 결정짓는 시대가 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수자원이 풍부한 편인 데다가, 물 이용 기술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서울대학교 공대의 한무영 교수는 빗물을 모아 이용하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우리의 수자원 이용 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각국을 돕고 있다. 세계인이 직면한 초미의 문제에서 기쁘게도 우리의 과학기술이 후발국을 돕는 선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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