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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벽돌책] 주어진 역할에 끔찍하게 충실한 보통 사람들

바람아님 2018. 10. 28. 09:27

(조선일보 2018.10.27 장강명 소설가)


'루시퍼 이펙트'


장강명 소설가장강명 소설가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한 심리학자가 학교 건물 지하실을 빌려 실험을 벌인다.

가짜 교도소를 만들고 남학생들이 각각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맡아 2주간 생활하는 것.

교도소 환경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본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실험은 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교도관'들이 가혹 행위를 벌였고, '죄수'들의 심리 상태가 위험한 지경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유명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다.

'루시퍼 이펙트'(웅진지식하우스)는 실험을 기획한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당시 상황을 세세히 서술한 책이다.


얼마 전 이 실험에 대한 조작 논란이 일었다.

실험 운영진이 교도관 역할 학생들의 잔악한 행동을 유도했다거나 정신착란을 보인 학생이 실은 제정신이었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그런데 심리학 실험으로서는 애초부터 결격이었고, 연구진의 과한 개입이나 특정 학생의 연기 가능성은

책에 다 나오는 내용이다. 연구보고서가 아니라 당시 상황을 기록한 르포 문학으로 받아들인다면 조작 논란은

독서에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루시퍼 이펙트'루시퍼 이펙트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같이]옮김/ 웅진씽크빅/ 2007/ 734p
180.733-ㅈ996ㄹ/ [정독]인사자실서고/ [강서]2층 자료실서고


르포르타주로서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이 주어진 역할에 얼마나 끔찍하도록 충실해지는지,

가해자건 피해자건 그런 허구 앞에서 얼마나 금방 무너지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연구진이 교도관역 학생들을 부추겼다 해도 충격과 불쾌함은 그대로다.

연구진 역시 '교도행정 관리'라는 역할에 몰입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학생들을 찾아온 가족들마저 '수감자 면회'라는 상황에 지독히 충실했다.

모든 것이 미쳐 돌아갈 때 이 역할극의 부도덕성을 지적하고 당장 걷어치우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를 둘러싼 허구는 참으로 많다.

장남이라든가 신참이라든가 졸업반이라든가 하는 사회적 위치, 성(性)에 얽힌 고정관념,

조직의 명예, 더 큰 진보, 민족 중흥의 사명….

그런 것들이 때로는 눈앞에 살아 있는 인간의 고통을 가리고 우리가 '루시퍼'가 되도록 만드는 건 아닐까.


'루시퍼 이펙트'는 미국에서 출간된 지 8개월 만에 한국에도 소개됐고, 나오자마자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가 됐다.

원고를 맡았던 최윤경 편집자는 "200자 원고지로 4000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워낙 속도감 있게 읽혀서

분권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 말대로 734쪽짜리 책이 잡으면 금방이다.




루시퍼 이펙트 -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엑스페리먼트'로 영화화되기도 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으로

널리 알려진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저작.

이 책에서 지은이는 스탠퍼드 모의 교도소 실험을 35년 만에 공개하고 분석하여,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과 악의 근원을 파헤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이라크 포로 수용소에서 발생한 학대 사건의 원인을 분석한다.



영화1


엑스페리먼트 = The experiment
폴 쉐어링 감독/ 유이케이/ 2010 / DVD 1매(96분)
NBT000018890/ [정독]디지털자료실(2동3층)
NBC000009513/ [강서]디지털실


영화2

더 스탠포드 프리즌 엑스페리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