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역지사지

바람아님 2018. 11. 1. 07:07
세계일보 2018.10.31. 08:49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주말에 사우나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우나실 한 쪽에는 이발사가 있다. 그곳에서 자주 이발을 하는 편이다. 머리를 깎으면서 TV에서 노부부의 인생 애환이 흘러나왔다. 아내가 남편 몰래 6000만원을 대출 받아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인 이야기였다. 듣다 보니 내용이 궁금해 이발사에게 볼륨을 조금 더 높여달라고 했다.


때마침 사우나를 마친 중년의 아저씨가 바로 옆에서 몸을 말리느라 드라이기를 틀었다. 요란한 소음 탓에 TV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저쪽에 가서 이곳에서 드라이기를 쓰나? 저놈의 드라이기 소리 언제 그치나' 하는 불만이 마음 안에서 일어났다. TV에선 돈 떼인 아내와 남편의 얘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인내심을 갖고 꾹 참으면서 기다렸으나 드라이기 작동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상체를 말리던 아저씨는 드디어 하체까지 드라이기로 말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도 예전에 이발하는 바로 옆에서 드라이기를 사용한 적이 있지 않았나? 그때 누군가의 TV 시청을 방해하지 않았을까.'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매우 어렵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이 축적된 인식의 토대 위해서 인식체계가 전혀 다른 타인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온전히 아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옛날 공자에게 제자 자공이 물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행할 한 마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스승이 말했다. "서(恕)이니라. 그것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


'서'란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말로 '내 마음과 같다'는 의미이다. 용서(容恕)에서처럼 타인을 가슴으로 품으려면 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 남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역지사지 없이는 타인을 품을 수 없다. 이해의 문을열려면 나의 자리가 아니라 그가 선 자리에서 보아야 한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