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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70] 좋은 일, 좋은 직업

바람아님 2018. 10. 27. 07:45

(조선일보 2018.10.27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백영옥 소설가


영화 '퍼스트맨' 보았다. 인류 최초로 달을 탐사한 닐 암스트롱에 관한 얘기였다.

배경이 되는 곳은 미국 우주항공국, 나사(NASA). 영화는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담보로 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줄곧 다른 것들이 생각났다.


가령 닐 암스트롱 같은 기념비적인 인물이 아니라,

그를 우주에 보내기 위해 노력했던 보이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 말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여성 최초의 나사엔지니어를 꿈꿨던 과학자들에 관한 얘기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코앞의 화장실을 놔두고 800m나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고,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었으며, 공용 커피포트조차 용납되지 않았던 시절에 활동했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얘기다.


기억나는 얘기가 하나 더 있다.

케네디 대통령이 나사를 방문하던 중 만났던 직원의 얘기였다.

직무가 무엇인지를 묻는 대통령에게 그는 "인류를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예상과 달리 그의 직업은 천체 물리학자나 엔지니어가 아니라 환경미화원이었다.

이 얘기는 내게 미국의 한 버스 운전기사들이 자신의 직함을 '안전 대사'로 바꾸어 부르기로 결정한 순간 일어났던

일을 연상시켰다. 운전기사라는 기능적 직무가 승객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귀가시키는 소명으로 승화된 것이다.


좋은 일과 좋은 직업은 조금 다르다.

좋은 일이란 내가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으며, 미래에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자신의 직업을 생계, 커리어, 소명으로 나누어 조사한 미국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자신이 하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예상 외로 많다.


처우가 낮은 일에 대한 자기 합리화가 아니란 뜻이다.

우주 비행사, 천체물리학자, 환경미화원. 그들은 나이도, 인종도, 직업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일을 위해 있는 힘껏 노력했다.

인류를 최초로 우주로 보내는 일 말이다. 





퍼스트맨 (First Man)
SF, 드라마  미국  141분  2018 .10.18 개봉 
데이미언 셔젤 감독

히든 피겨스 = Hidden figures
테오도어 멜피 감독/ 이십세기 폭스/

2017/ DVD 1매 (본편 127분)
NBT000029775/ [정독]디지털자료실
NBC000015428/ [강서]디지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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