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0.30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지구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은 무엇일까.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다. 지난해 11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30만달러(약 5130억원)에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문화관광부로 팔렸다. 그림의 제목은 라틴어로 '구세주'란 뜻이다.
왼손에는 우주 천체를 뜻하는 수정구를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는 검지와 중지를 세워
축복을 내리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그렸다.
최근 영국 과학자가 다 빈치의 천재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밝혀 줄 새로운 증거를 찾아냈다.
비밀은 바로 '살바토르 문디'에 숨겨져 있었다.
원래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의 제자 지오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가 그렸다고 알려졌다.
그러다가 2011년 가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개최된 전시 '밀라노의 궁정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전을 통해
다 빈치가 직접 그린 진품(眞品)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그림에 나온 예수의 모델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자신으로 알려져 세상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켰다.
런던 시립대의 크리스토퍼 타일러 교수는 올 10월 18일 국제 학술지 '미국의학협회저널(JAMA) 안과학'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뛰어난 예술성은 사시(斜視)에서 비롯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시(斜視)는 정면을 바라볼 때 두 눈동자가 나란히 있지 않은 현상을 말한다.
한쪽 눈동자의 시선이 정면을 비켜나 안쪽이나 바깥을 향해 있다.
타일러 교수는 안과에서 쓰는 검안(檢眼) 기법을 이용해 다 빈치를 모델로 한 유화와 조각상, 데생 여섯 작품을 분석했다.
'살바토르 문디'를 비롯해 그가 그린 '비트루비우스 인체 비례도'와 그의 스승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청동상 '젊은 다윗'도
들어 있었다. 작품 속 인물의 눈동자를 분석하자 왼쪽 눈동자가 바깥쪽으로 평균 10.3도 비켜나 있었다.
타일러 교수는 이를 근거로 다 빈치는 사시 중에서도 외사시(外斜視)였다고 주장했다.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모나리자'를 그린 다 빈치는 사시였다
/일러스트=이철원
이번 연구에 따르면 다 빈치의 사시는 그의 예술에 장애였다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을 줬다.
타일러 교수는 다 빈치가 사시 덕분에 3차원 입체를 2차원 평면에 구현하기가 쉬웠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람은 두 눈으로 사물을 보고 원근감과 입체감을 느낀다. 하지만 입체를 캔버스에 옮기려면 2차원으로 바꿔야 한다.
화가들은 이 작업을 위해 입체를 볼 때 일부러 한쪽 눈을 감는다.
반면 사시를 가진 사람들은 뇌의 혼동을 막기 위해 아예 한쪽 눈으로 온 정보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한쪽 눈을 감지 않아도 입체를 평면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는 말이다.
타일러 교수는 다 빈치는 사시 증세를 간헐적으로 앓았다고 추정했다.
그가 직접 그린 비트루비우스 인체 비례도는 눈동자를 나란히 그렸다는 점이 그 증거로 제시됐다.
그 점에서 다 빈치는 자신의 사시 증세를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덕분에 입체를 평면으로 구현하는 것뿐 아니라
평면 그림을 입체 조각으로 구현하는 데에도 특출한 능력을 보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일러 교수의 분석처럼 뛰어난 화가 중에는 사시였던 사람이 여럿 있다.
2004년 미국 하버드 의대의 신경과학자들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분석해 그가 사시였으며,
그 덕분에 정밀한 얼굴 묘사가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 클림트, 쿠닝, 피카소, 리히텐슈타인 같은 뛰어난 화가들이 사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을 많이 쓰는 직업이다 보니 후천적으로 눈에 병(病)을 얻은 화가들도 많다.
과학자들은 이들의 그림을 통해 당시의 병세를 추정하기도 한다.
'해바라기'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그림에 유독 노란색을 많이 썼다.
법의학자들은 고흐가 생전 즐겨 마신 압생트란 술을 의심했다. 압생트에 들어 있는 테레벤이라는 물질이
시신경을 훼손시켜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黃視症)을 앓았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인 클로드 모네도 백내장으로 10년 넘게 고생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점점 흐려지는 질병으로 시야가 흐릿해지고 심하면 파란색을 아예 보지 못한다.
실제로 모네가 백내장에 걸리기 전에 수련이 핀 연못을 그린 그림은 미묘한 색의 변화를 잘 포착하고 있지만,
백내장 수술을 받기 직전의 그림은 색이 어둡고 칙칙하며 파란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과학이 그림에 담긴 화가의 고통까지 밝혀낸 것이다. 모
네는 1923년 백내장 수술을 받고 나서 예전의 화풍(畵風)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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