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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7] 日 외교 각성시킨 露의 쓰시마 점령

바람아님 2018. 11. 16. 06:49

(조선일보 2018.11.16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칼럼 관련 일러스트1861년 구력(舊曆) 2월 3일, 증기선 한 척이 쓰시마번(對馬藩) 앞바다에 출몰한다.

러시아 군함 '포사드니크호(號)'였다. 번주인 소 요시요리(宗義和)가 상륙 허가를

거절하자, 러시아 해군은 선체 수리를 이유로 무단 상륙을 강행하고 막사 등

주둔지를 설영(設營)하기 시작한다. 수상한 행동의 연속이었다.

선체 수리는 핑계였다. 포사드니크호의 임무는 쓰시마에 부동항 기지 확보였다.

거듭되는 퇴거 명령을 무시하고 버티던 러시아군은 이윽고 본색을 드러내

해협 요충지인 이모자키(芋崎) 조차(租借)를 요구한다. 러시아군의 횡포로

불상사가 속출하고 번이 우왕좌왕하자 막부의 신경이 곤두선다.

외교 담당 각료인 오구리 다다마사(小栗忠順)가 러시아 영사에게 항의하고, 현지에 임하여 직접 퇴거를 요청했으나

러시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막부 외교력의 한계였다.


7월에 접어들자 상황을 주시하던 주일 영국공사 올콕이 은밀하게 개입에 나선다. 당시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 저지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두 나라는 크림전쟁을 필두로 무력 충돌을 불사하는 '그레이트 게임'의 와중이었다.

올콕은 러시아의 동아시아 해역 진입 봉쇄를 위한 초동 강경 대처를 본국에 상신한다.


7월 23일 막부 요청의 형식으로 영국 동양함대 군함 2척이 쓰시마로 출동해 무력시위에 나서자 비로소 러시아가 한발

물러선다. 8월 15일 포사드니크호는 쓰시마에서 퇴거하였고, 6개월에 걸친 무단 점령도 종료됐다.

이 사건을 통해 일본은 러시아의 위협을 재삼 인식하고 '그레이트 게임'과 '팍스 브리타니카(영국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에 눈을 뜬다. 이후 일본 외교의 줄기는 그 각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쓰시마를 놓친 러시아가 부동항 대체지로 조선에 접근하고 조·러 관계가 밀착되자

영국은 조선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에 러시아를 끌어들인 선택을 한

나라의 운명은 이후 역사가 보여주듯 가혹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