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백영옥의 말과 글] [73] 함께 견디는 삶

바람아님 2018. 11. 17. 15:41

(조선일보  2018.11.17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백영옥 소설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다가 인상적인 대사(臺詞)를 발견했다.

신인 때 잘나가다가 망한 여배우가 천재 소리를 듣다가 데뷔도 못한 감독과 나누는 이야기였는데,

그녀의 앞에는 한때 잘나가다 망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제약회사 이사, 은행 부행장, 자동차 연구소 실장을 하다가 각각 백수, 미꾸라지 수입업자,

모텔에 수건 대는 업자로 전락한 쉰 살의 아저씨들 말이다. 망한 사람 앞에 두고 망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는 감독에게 배우가 말한다.

"인간은요. 평생을 망가질까봐 두려워하면서 살아요. 전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엔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좋았는데,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더 좋았어요.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이 됐어요….

전혀 불행해 보이지가 않아요. 절대로.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줘서."


얼마 전,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란 책을 낸 프로파일러 권일용을 만났다.

책에는 네 살 아이를 죽여 토막 살해한 남자와의 면담 중 백반을 주문해 함께 먹는 장면이 나온다.

'2001년 6월 초여름 조현길을 만난 날 이후, 자신이 다른 세계로 들어와버렸다'는 문장을 읽다가 잠시 멈췄다.

괴물의 심연을 매번 들여다봐야 하는 프로파일러의 인간적 고통이 느껴져서였다.

그는 가족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동료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다 같이 힘든 사람들이 소주를 나눠 마시며 고통을 n분의 1로 나누었기에 그 세월이 견뎌졌다는 것이다.


성공은 희귀하고 실패는 흔하다. 망한 사람을 보며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고 안심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여린 아이가 울고 있을까. 인간이 위로받을 때는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볼 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타인의 고통과 비교하며 자신의 '다행'을 인식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자 울면 외롭지만 함께 울면 견뎌지는 게 삶이다.

 



책소개 :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의 연쇄살인 추적기
저자: 권일용,고나무/ 알마출판사/ 2018/ 277 p
334.24-ㄱ533ㅇ/ [정독]인사자실/  [강서]2층


한국 최초 프로파일러와 프로파일링 팀의 탄생,

악의 해석자들의 연쇄살인 추적기!

연쇄살인범의 마음속, 어두운 방으로 걸어 들어가라

“제복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억울하게 생을 마쳐야 했던 피해자들과의 약속이 내 삶의 배수진이었다.”


_권일용(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순경 권일용이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되고

그의 프로파일링 팀이 탄생하는 과정과, 그들이 사건 현장에서 기존의 관습과 고정관념을 딛고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프로파일러는 영화와 드라마 등의 소재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존재다.

그러나 일선의 그들은 여전히 묵묵히 암약한다.

이 책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사건 당시 현장의 경험을 가감 없이 옮긴 실화다.

독자들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통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어두운 방과 같은 연쇄살인범의 마음속으로 서슴없이 걸어 들어가는

프로파일러들의 세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