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목멱칼럼]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바람아님 2018. 11. 17. 07:55

이데일리 2018.11.16. 05:00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사회는 반대로 가는 듯하다. 남에 대한 험담은 늘어나고 칭찬은 사라지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PR(홍보) 시대’라는 말도 있듯이 본인은 칭송받고 돋보이려 한다. 그런데 이 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칭찬받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먼저 칭찬해야
하고, 스스로 칭찬받을 행실도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그러면 칭찬받을 만한 행실은 어떤 것일까? 이것도 역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참된 마음으로 행하되, 그 마음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다. 참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근래 접한 이런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얼마 전 퇴계 종손(이근필 옹, 87세)에게 편지 한통이 배달되었다. 며칠 뒤 학생들을 데리고 종택을 방문할 정년을 앞둔 고등학교 교사가 보낸 것이었다. 뜯어보니, 2016년도에 학생들과 함께 수련원에 다녀갔는데 당시 착한 사람을 권장하던 종손의 말씀에 무척 감동받았다면서, 며칠 뒤에도 학생들을 인솔하고 가는데 지난번 말씀과 함께 학생들이 가장 관심 있는 공부에 관한 좋은 이야기도 들려달라는 부탁의 내용이었다. 30분 이상 소요되는 종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퇴계종택에는 선비수련생과 단체 방문객이 수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방문 전에 이야기의 내용에 관하여 이렇게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자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정년을 앞두고도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편지를 받은 종손은 무슨 말을 들려줄까 궁리를 거듭하다가 본인의 어린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포항공대 초대 총장 김호길 박사(1933-1994)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김 박사는 핵물리학을 전공한 방사광 가속기라는 현대첨단과학 장비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면서 사서삼경을 줄줄 외는 전통학문의 최고수이기도 한 분이다. 이런 친구에 대해 종손은 그가 어릴 적 퇴계 묘소 아랫마을의 고모 댁에서 지내며 열심히 공부했을 뿐 아니라 구김살 없이 잘 놀기도 하였다는 이야기를 관련 에피소드를 곁들여 전하며, ‘학생들도 꿈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면 오르지 못할 나무는 없다’고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의 눈이 반짝반짝 거렸다. 선생님이 미리 보낸 편지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구십을 바라보는 종손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찾아와도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무슨 대가가 있어서가 아니다. ‘내 소원은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所願善人多)’이라고 했던 퇴계 선생의 실천적 삶을 본받아 이어가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날 이야기를 끝낸 종손은 기뻐하는 학생들을 대문까지 나와 일일이 송별하면서 뒤따르던 교사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편지를 보내신 선생님이시지요? 편지를 보내 저를 일깨워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덕분에 김호길 박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이참에 정리해서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종손이 한참 힘을 쏟고 있는 도덕재무장 운동의 슬로건인 ‘허물은 덮어주고 착한 것은 드러내자’는 내용을 담은 목걸이와 친필 글씨 그리고 퇴계 선생 일대기를 담은 책을 전했다.


필자는 이 아름다움 모습이 오가는 현장을 지켜보지는 못했다. 선비수련을 마칠 무렵 인솔 교사가 수련원 간부에게 수련 소감을 전하면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본인의 편지 이야기도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종손의 인품을 칭송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자신도 드러나게 된 것을 쑥스러워 하더란다. 남을 드러내어 칭찬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조심스러워 하는 선비정신의 참모습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종손에게 확인하니 사실이라며 모처럼 훌륭한 교사를 만나서 참으로 기뻤다고 했다. 작은 이야기지만, 무슨 일을 하든 어느 시간을 살아가고 있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최은영 (euno@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