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 벼슬길 進退 확실
동료들은 朝廷 비우고 전송
그가 소망한 착한 사람이란
하늘이 준 본성대로 사는 것
‘所願善人多’ 임무, 天命 여겨
독서와 사색으로 몸소 체득
대체로 인간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자기가 필요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의사는 무시하고 떠나보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거나 못된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떠나보내는 장면을 볼 때는 사람들이 감동하며 그 스토리에 빠져든다. 하지만 공적인 관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런 스토리가 이뤄지기 어렵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공적 관계에서는 서로 헤어지기 싫을 정도로 끈끈한 사이가 되기가 쉽지 않다. 다음으로, 꼭 함께해야 할 사람이라 확신하면 상대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 뜻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요즘 시대에도 이럴진대, 그 옛날 왕조시대에 신하가 자신을 붙잡는 임금을 떠나기는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선의 참선비(眞儒·진유)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어느 곳에 머무는 것이 가장 옳은가’ 하는 판단이었다. 나아가 벼슬하는 것과 물러나 학덕을 쌓는 삶 사이에서 늘 고뇌에 찬 선택을 해야 했다. 이것이 진(進)과 퇴(退), 즉 ‘나아감’과 ‘물러남’의 출처관이다. 전통시대 이 진퇴 문제를 둘러싼 가장 대표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가 퇴계 선생의 경우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등극한 명종은 퇴계의 학식과 인품을 존경해 조정에 나오도록 여러 차례 적극 종용했다. 여기에는 당시 조정 신료들의 건의도 크게 작용했다. 조선 4대 명재상으로 존경받던 정승 상진(尙震·1493∼1564)도 그중 한 사람인데, ‘퇴계는 청렴해 타락한 풍속을 바로잡을 수 있고 중국 사신을 가장 잘 접대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여론에 앞장섰다.
그런데도 퇴계는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힘으로 불러올릴 수 있는 절대권력을 지녔음에도 명종은 이를 휘두르지 않고 그의 의사를 존중했다. 대신 신하들에게 ‘현인을 불렀으나 오지 않으니 이것이 한스럽구나(招賢不至嘆·초현부지탄)’ 하는 제목으로 시를 짓게 해 퇴계와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명종은 도산이 얼마나 좋기에 나오려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화공에게 도산을 그려오도록 명해 그 그림에 퇴계가 도산을 찬양한 글인 ‘도산기(陶山記)’를 써서 병풍으로 만들어 침전에 두기도 했다. 필요하면 강제로 끌어내고, 오지 않으면 처벌하는 권력의 속성을 떠올릴 때,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이런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선비를 예우했다. 특히, 퇴계에게는 예우가 이처럼 더욱 남달랐다.
그러던 중 퇴계가 조정에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콧대 높은 명나라 사신을 상대할 인물로 퇴계가 가장 적격으로 거론된 것이다. 이에 퇴계도 나라를 위해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상경했다. 그런데 조정에 나가 뵙기 직전에 뜻밖에도 명종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퇴계는 소임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명종에 이어 갑자기 왕위에 오른 어린 선조는 더욱 퇴계 선생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찍이 그대의 명성을 듣고 태산북두처럼 바라보았다. 어리고 부족한 나를 도와 달라’고 한껏 자세를 낮춰 간곡히 불렀다. 퇴계는 간청을 이기지 못해 노구를 끌고 다시 상경해 어린 임금을 보필했다. 유명한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를 통해 국정 현안에 의견을 내고, 경연에서 임금의 공부도 도왔다. 그리고 그림까지 곁들인, 임금의 정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만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 역시 퇴계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퇴계는 임금에게 여러 차례 간곡히 귀향을 청했고, 마침내 선조가 그의 귀향을 허락하자 마지막으로 한강을 건넜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동료들이 조정을 텅 비우다시피 하며 한강가에 나와서 전송했다. 때는 퇴계가 별세하기 1년 9개월 전, 매화가 한창인 봄철이었다. 그런데 퇴계가 살아서 하려고 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소원은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所願善人多·소원선인다)이었다. 조정의 어떤 직책이 이보다 더 막중할 수 있겠는가?
퇴계가 소망하는 착한 사람이란, 하늘이 부여한 본성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대는 물론 후세까지 많아지려면 이들에게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먼저, 퇴계 자신이 성현의 말씀이 담긴 서책을 읽고 이를 체득하기 위해 사색해야 한다. 그리고 제자 후학들과 문답 토론도 하고 이를 토대로 저술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이런 일은 당연히 안온하고 집중할 수 있는 곳에서 해야 능률이 오른다. 그곳이 바로 도산이었다. 퇴계는 도산서당에서 독서하고 낙동강변의 천광운영대와 천연대를 오르내리며 사색했다. 그에게 있어 독서와 사색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똑같이 소중했다. 혼자서 하기도 하고 농운정사에 머무는 제자들과 함께도 했다. 낮에도 밤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한결같았다. 나랏일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었지만, 도산에서 추구하는 ‘소원선인다’의 임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하늘이 부여한 사명 즉, 천명(天命)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이와 같은 퇴계의 소망은 어찌 됐을까? 퇴계의 가르침이, 오늘의 우리에게 착하게 사는 길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으니 그의 소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퇴계의 소원이 결실을 더욱 잘 거두려면 후손인 우리가 더욱 착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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