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집 사이에 외할머니댁이 있었다. 하굣길에 자주 들렀다. 차려 주시는 밥을 먹고 따뜻한 아랫목에 잠들곤 했다. 곤한 잠에 깨어나면 나를 덮은 한 장의 치마가 늘 곁에 놓여 있었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에 등장하는 여인의 치마를 볼 때마다 할머니의 그 포근한 치마가 생각난다. 혜원의 치마와 할머니의 치마는 분명 형태가 다르고 용도도 다르다. 하지만 치마폭이 품은 따뜻한 공기는 같은 계보를 갖는 것 같다.
흥선 대원군은 곁에서 도움을 아끼지 않은 기생의 치마에 난을 쳐 주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연인의 피부를 덮는 천에 남기는 정표다. 사랑을 나눈 다음 날 아침 남자가 떠날 때 그의 부재를 대신하기 위해 남기는 그림이다. 남자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그를 대신하는 난이 여인의 속살 가까이 봉오리를 맺을 것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에 제 허리를 베어내는 고통만은 면하게 할 것이다. 치마 속 온기는 남자를 머물게 하고 남자의 손길과 숨결에 불을 지핀다.
치마를 다산이 받을 무렵 부인은 병환 중이었다. 멀리 떨어진 남편의 처지나 자신의 병세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절망 속에서 부인은 치마를 부쳤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자신을 대신해 보낸 것이 치마였다. 거기에는 둘만이 나누었던 사랑과 가정을 시작할 때의 희망 그리고 자녀들의 탄생이 담겨있다. 이 치마 속의 온기는 기억으로 그득 차 있다. 훈훈한 추억으로 가족에게 닥친 환란을 이겨내자는 것 같다.
다산은 안과 밖을 구별하는 치마의 속성을 해체하고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책자로 만들었다. 용도가 다하면 사라질 옷 대신 삶의 지침이 되는 교훈을 담는 페이지들로 바꾼 셈이다. 치마가 다산의 손을 거쳐 미래 세대에게까지 열람될 수 있는 영속적인 오브제가 되었다.
혜원 신윤복이 전신의 ‘미인도’를 크게 그렸고 그 그림이 전해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그림이 빠진 한국미술은 들국화 없는 가을 들녘처럼 쓸쓸할 것이다. 가채를 얹기엔 아직 일러 보이는 앳된 소녀가 춤이 짧고 소매가 좁은 저고리에 다소곳이 서서 멀리 시선을 두는 그림이다. 이들 세부를 풍성한 옥색 치마가 화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채 받친다 배추포기처럼.
고대 그리스 조각의 옷 주름이 중력 방향을 향해 치달으면서 신체를 육감적으로 암시하려는 반면 혜원의 옷 주름은 아래로 흘러내리지만 이내 퍼지거나 사라진다. 혜원의 치마는 넉넉한 폭과 품이 깃들어있다. 신체보다 그 몸과 어우러진 내부의 공간과 공기에 관심이 더 크다. 그래서 혜원의 치마는 풍선처럼 떠 있는 듯하다.
그 안은 소녀의 체온으로 데워져 있어 항상 봄날이다. 이 따뜻한 온기 속에 사랑하고 생명이 태어나고 역사가 이어져간다. 아귀다툼의 소식들이 범람하는 한 주를 마무리하면서 따뜻한 온기로 품는 혜원의 치마폭을 생각한다. 포근히 하늘을 감싸던 노을이 사라지고 혜원의 치맛자락을 비집고 나온 외씨버선처럼 새하얀 달이 삐죽 창공에 걸렸다.
전수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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