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1.24 장강명 소설가)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장강명 소설가
한때 제임스 핀 가너를 필두로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동화 고쳐 쓰기'가 유행했다.
'신데렐라'가 여성 해방운동을 일으킨다는 식의 뒤틀기가 주장하는 바는 이해했으나,
매력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 이야기들에는 고전동화의 핵심이 빠진 것 같았다.
나는 어릴 때 무엇보다 옛 동화들이 무서웠다. 거기에는 잔인한 마법과 폭력이 있었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나약한 인간들이 있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깔끔한 해피엔딩도 아니었다.
성냥팔이 소녀도 인어공주도 죽었다. 많은 이야기가 어둡고 슬펐다.
824쪽짜리 소설집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현대문학)는 고전동화를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 41편을
모은 책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 존 업다이크, 닐 게이먼 등 쟁쟁한 대가부터 1970년대생 젊은 작가까지 주로 영미권에서
다양한 소설가가 참여했다.
역시 상당수 글이 어둡고 슬프다. 그리고 옛 동화처럼 매혹적이다.
작가들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라 폭력적이고 불가해한 세상과 그에 휘둘리는 인간의 약한 내면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사람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면서도 끝내 사로잡고야 마는 것 같다.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조이스 캐럴 오츠 [외] 40인 지음/ 케이트 번하이머 엮음/
서창렬 옮김/ 현대문학/ 2015/ 822 p.
808.3-ㅇ454ㅇ/ [정독]어문학족보실/ [강서]3층 어문학실
재해석의 대상이 된 동화는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푸른수염' 등 익숙한 것도 있고
멕시코나 베트남의 다소 낯선 민담도 있다.
티머시 샤퍼트의 '나무의 인어'는 펑크 분위기에 주술을 얹은 기묘한 인어 이야기다.
반면 똑같이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한 캐서린 바즈의 단편 '몸이 사라질 때 소라고둥이 부르는 노래'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두 작품은 모두 남녀의 엇갈리는 사랑 이야기로, 결말이 '인어공주' 원작처럼 서글프고 아름답다.
국내 번역서를 펴낸 현대문학의 김현지 단행본팀장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현장에서 탄생한 텍스트의 힘이 컸고, 현대 영미문학의 젊은 작가들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2015년 출간 뒤 지금까지 5쇄를 찍으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현대문학은 '세계의 동화' '주석 달린 안데르센 동화집' '주석 달린 고전동화집' 등을 펴내는 등 동화 출간에
진지한 관심을 가져온 출판사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 낸 책답게 원서에는 없는 원작 동화의 내용 요약이
뒤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들에게 쏠쏠히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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