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8.12.07 09:30 [590호] 2018.12
![](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0.jpg)
‘클린 하이킹’ 캠페인 벌이며 100명산 그리는 스타 벽화가
클린 하이킹 바람이 일고 있다. 산의 쓰레기를 줍는 것은 기본이고, 자연에 흔적을 남기지 말고 산행하자는 ‘LNT Leave No Trace’가 젊은 등산인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젊고 신선한 친환경의 바람, 그 선두에 벽화가 김강은(29세)씨가 있다.
그녀는 독특하게도 산에 올라 풍경을 수채화로 그린다. 산 밖에서 산을 그리는 것이 아닌, 산에 올라 산을 그린다. 젊은 여성이 산꼭대기에서 그림을 그리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 이렇게 산에서 그린 그림을 셀카로 찍어 SNS에 올리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1만6,000명에 이르며, 페이스북과 블로그도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SNS상에서는 별명인 ‘하이킹 아티스트’로 통한다.
김강은씨는 늘어난 인기와 관심을 산을 깨끗이 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매달 정기적으로 ‘클린 하이킹’을 주최해 산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산행을 공지하고, 신청을 받아 5~10명이 함께 산행하며 쓰레기를 줍는다.
![제주 올레길을 걸을 때의 김강은씨.](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1.jpg)
![순례길 마지막 도착지에서 만난 산티아고대성당을 그렸다.](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2.jpg)
![클린 하이킹의 일환으로 바위 틈의 쓰레기를 줍고 있다.](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3.jpg)
![네팔 오지학교 벽화 봉사 활동을 하는 김강은씨.](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4.jpg)
보통 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신청자가 많은 편인데 인원수를 제한하는 것은 “단체 산행으로 인한 환경 피해를 줄이고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이다. 또 LNT에 대한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 항상 새로운 사람을 초대해 산행 후기를 공유하도록 권하고 있다.
“인터넷 팔로워 숫자가 늘어나면서 영향력이 생긴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면서 원래 취미 생활을 공유했는데, 공익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첫 클린 하이킹이 서울의 청계산이었는데 포대 자루가 넘쳐 다 못 주울 정도로 쓰레기가 많았어요. 쓰레기를 줍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인식을 바꾸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막상 해보니 환경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고 이야기 나누면서 생각이 확장되는 부분이 많아서 너무 좋았어요.”
계기는 지리산 장터목대피소였다. 저녁을 먹으러 취사장에 갔는데 온갖 음식물 쓰레기와 술병이 널려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먼저 산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쓰레기를 주우며 산행을 하고, 아쉬웠던 장면을 웹툰으로 그려 SNS에 올렸다. 의외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 산행에 동의하고, ‘흔적 남기지 않기’에 적극 공감하면서 ‘클린 하이킹’으로 발전했다.
어릴 적부터 화가가 꿈이었던 그는 고교 졸업 후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다. 목표를 정하면 주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매진해 반드시 이뤄내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기에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다. 허나 졸업할 시기가 되자 속된 말로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그는 “홍대 미대만 졸업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고 말한다.
![설악산 산행을 할 때의 김강은씨. 그녀는 설악산과 지리산을 가장 좋아하며 1박2일 산행을 즐긴다.](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5.jpg)
![산에서 사용하는 미술도구. 산행 중 그리는 것이라, 쓸 수 있는 색깔이 많지는 않다.](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6.jpg)
![북한산 응봉능선에 올라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완성하는 데 보통 1시간 정도 걸린다.](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7.jpg)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의 김강은씨. 지난해와 올해 총 3개월을 걸었다.](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8.jpg)
“내 꿈은 100세까지 산 타는 것”
순수 미술의 길을 포기한 그녀는 2014년 페이스북 기반의 ‘열정에 기름 붓기’라는 스타트업기업(신생 벤처기업)을 또래 3명과 함께 시작했다. 취업난과 학업 경쟁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콘텐츠를 카드 형태로 만드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 1년 6개월을 밤낮 없이 노력했으나, 그림에 대한 미련으로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상업 벽화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지금까지 프리랜서 벽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카페나 음식점 같은 사업장을 비롯해 공원, 수영장 등 대형 시설의 벽화를 그려 왔다.
산은 아마추어 산악사진가인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갔던 기억이 남아 있었고, 2012년 대학을 졸업할 쯤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여행은 가고 싶은데 돈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간 곳이 산”이었다.
“충격이었어요. 여러 가지로 우울할 때였는데 산행의 과정이 너무 놀라웠어요. 힘들지만 올라서면 멋진 경치가 펼쳐지고, 시원하게 바람이 불어오고, 음식도 너무 맛있고, 모든 과정이 단순하면서도 충격이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살아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이후 등산에 재미를 붙인 그녀는 서울 근교 산을 비롯해 전국의 산을 누볐고, 아버지와도 1년에 한 번씩 지리산을 찾아 장터목대피소에서 1박하며 천왕봉 일출을 감상한다. 미술에 대한 갈증을 풀어준 것도 산이었다. 상업 벽화는 사업장 사장이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해야 하기에 못 다한 그림에 대한 꿈이 남아 있었다.
![외국 사막 같은 대청도 옥죽도해변을 찾았다.](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9.jpg)
![응봉 능선에서 본 북한산.](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10.jpg)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11.jpg)
![스페인 오세브레이로 마을에서 그린 그림을 보여 주고 있다.](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12.jpg)
![밀밭 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산티아고 순례길에 반해 수채화를 그렸다.](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13.jpg)
2017년 8월 우연히 도봉산에 올라 수채화를 그렸는데, 잊고 있던 그림의 즐거움을 깨우는 계기가 됐다. 미대 출신이라는 부담감이 늘 작용해 뭔가 대단한 걸 그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데, 산에서 아무 부담 없이 그림의 즐거움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또 이 그림을 SNS에 올려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00명산 그리기를 시작했으며, “산림청 100명산이 아닌, 제가 임의로 선정한 100명산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원래 펜 드로잉으로 그렸는데 지금은 수채화를 그리고 있어요. 산이 주는 느낌에 따라 색깔을 써요. 100% 사실적인 색감은 아닌 거죠.”
김씨의 그림 그리기는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2016년 두 달 반 동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도 북부 산간지방을 걸었으며, 알프스 투르드 몽블랑을 걸었다. 올해에도 다시 스페인을 찾아 30일간 산티아고 프랑스길 800㎞를 완주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간 건, 그림 때문이었다.
매일매일 목표한 거리를 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거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 다시 찾았을 때는 걷다가 “그냥 여기다”라고 느껴지는 풍경에서는 무조건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보통 1시간 정도 걸리는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응원을 해준다.
![월악산 영봉에서 본 충주호.](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14.jpg)
![제주도 바굼지오름에서 본 산방산.](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15.jpg)
![민주지산에서 본 산경.](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16.jpg)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에서 마주친 고성.](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8/11/29/2018112902903_17.jpg)
올해 1월에는 충주 산악인 김영식 교사의 주선으로 네팔 오지 학교에 벽화를 그리는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현지에서 미술 재료를 구입했는데, 품질이 너무 떨어져 쉽지 않았지만 현지인들이 “마을이 희망차게 바뀌었다”며 기뻐해 보람됐다고 한다. 봉사 차원에서 자비를 들여 18일 동안 다녀왔으며 내년 1월에도 네팔 벽화 봉사를 갈 예정이다.
간혹 그녀의 화려한 면만 본 사람들이 “생계 걱정 없는 금수저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땐 “벽화를 그리며 일의 양을 조절하고 있다”고 얘기해 준다. 일에 빠져 돈 버는 데 몰두한 적도 있지만, 환기가 잘 안 되는 실내에서 매일 10시간씩 페인트로 그리느라 건강이 나빠진 적도 있어 일의 양을 조절하고 있다.
무한경쟁과 취업난으로 힘들어하는 요즘 20대처럼, 김강은씨도 쉽지 않았다. 치열하게 노력했으나 현실의 벽에 막혀 좌절할 때도 많았고, 엄청난 스트레스로 힘들었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산을 통해서 행복을 되찾고, 그림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하이킹 아티스트’ 김강은씨는 100명산을 그리는 것을 넘어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한다. 바로 “100세까지 산을 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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