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장강명의 벽돌책]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바람아님 2019. 1. 5. 18:22

(조선일보 2019.01.05 장강명 소설가)


스터즈 터클 '일'


스터즈 터클의 '일'은 사뭇 감동적인 인터뷰집이다. 분량은 880쪽이나 되지만 콘셉트는 간단하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터클은 직업인 133명을 만나 그들의 일에 대해 자세히 듣고 글로 옮겼다.

만난 사람은 다양했다. 농부, 기업 최고 경영인, 환경미화원, 가톨릭 신부, 용접공, 요트 중개상, 야구 선수, 홍보 전문가,

모델, 교수, 경찰, 웨이트리스, 회계사, 택시 기사, 재즈 뮤지션…. 심지어 성매매 여성도 있다.


그 많은 직업과 삶에 대해 읽다 보면 그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점이다. 어떤 업계건 복잡한 세부사항과 의외의 난관이 가득하다.

그리고 업계 종사자는 거기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신문배달 소년조차 제멋대로인 배급소와 요금을

납부하지 않는 고객, 신문 도둑, 맹견으로 골치를 썩고 "배달을 하면서 사람과 개를 미워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다음으로 알게 되는 것은, 사람은 존경과 의미도 돈만큼이나 절실히 원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일이 만족스럽다는 전문직 종사자는 돈이 아니라 자존감과 보람을 말한다.

자기 일에 불만족이라는 일용직 노동자 역시 돈이 아니라 주변의 무시와 보람 없음을 토로한다.

많은 이가 돈을 위해 무의미를, 혹은 의미를 위해 가난을 견뎌내야 하는지 고민한다.

"일을 훌륭히 해내면 영혼이 편안해진다"는 중장비 기사가 있고

"사람을 온전히 담을 만큼 큰 직업은 없다"는 편집자도 있다.


스터즈 터클 '일'(누구나 하고 싶어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스터즈 터클 지음/ 노승영 옮김/ 이매진/ 2007/ 880p
336-ㅌ56ㅇ/ [정독]인사자실/ [강서]2층


깊은 감정을 품고, 주변 세계의 평가를 재평가하고, 내적인 가치를 찾아내고자 분투하면서

사람들은 모두 얼마간 철학자가 된다.

'현장의 철학'이 생활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은 감탄스럽다.

콜걸은 "사람은 수도꼭지처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통찰을 들려준다.

어떤 인터뷰는 그 자체로 짧은 소설 같은 드라마다.

경찰관 출신 2년 차 소방관이 자신이 전직(轉職)한 이유를 설명하는 편이 한 예다.


한국어로 번역된 터클의 책 네 권이 모두 이매진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출판사는 터클처럼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한 국내 저자의 논픽션도 의욕적으로

펴내고 있다.

철수 이매진 대표는 "한국에서는 논픽션 작가와 독자층이 모두 얇아 아쉽다"며

"이달 중 터클의 자서전을 출간한 뒤 본격적으로 국내 작가들의 인터뷰 책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Why] [편집장 레터] 天職이 그리운 시대


(조선일보 2014.11.01 강인선 주말뉴스부장)

 

요즘 '미생'이란 만화와 TV드라마가 화제라기에, 지난 주말 만화책도 보고 드라마도 봤습니다.

재미있긴 했는데 좀 피곤하더군요. 일주일 내내 일하고 나서 주말에 직장생활을 주제로 한 만화책과 드라마를

보고 있으려니 계속 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생각난 김에 예전에 읽었던 직업을 주제로 한 책 몇 권을 뒤적여봤습니다.

그중 한 권이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작가 스터즈 터클이 3년 동안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쓴 책으로 무대는 1960~70년대 미국입니다.

출판사 편집자인 노라 왓슨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그는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영혼에 비해 너무나 하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온전히 담을 만큼 큰 직업은 없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책으로 '천직여행'이 있는데, 미국 작가 포 브론슨이 2000년대 초반 역시 여러 명을 인터뷰해 쓴 책입니다.

변호사로 죽기 살기로 일하다가 트럭운전사로 변신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변호사 일을 때려치우겠다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말합니다.

"네모난 못을 둥근 구멍에 아무리 꿰맞추려 해도 불가능하듯이 사람도 자기에게 맞는 자리에 있는 것이 순리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원치도 않는 일에 평생을 걸어서야 되겠느냐."


예전엔 절실하게 느껴져 밑줄 그어놓은 부분들인데 다시 읽어보니 한가하게 느껴집니다.

일자리 구하기가 워낙 어렵고 절박한 시대라, 일과 관련해 영혼이나 천직을 말하는 게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거겠지요. 그런 시대라 직장생활을 다룬 드라마가 더 사무치게 와 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주말엔 해야만 하는 일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딴생각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본격적인 가을이니까요.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천직 여행
포 브론슨 지음/ 김언조 옮김/ 물푸레/ 2009/ 445 p
848-ㅂ958ㅊ/ [정독]어문학족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