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나이먹은 애'는 되지 마세요, 품위·유머는 간직하시고

바람아님 2019. 1. 6. 17:52

(조선일보 2019.01.05 곽아람 기자)


미국 지성인 2인의 나이듦 예찬
노년의 몸·사랑부터 빈곤까지… 8개 주제로 대화하듯 펼친 노년론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마사 누스바움·솔 레브모어 지음|안진이 옮김|어크로스|472쪽|1만7000원


"나이가 들면 우리 모두 두 번째 아동기에 들어선다.

이 시기에는 자아의 절박한 요구와 육체의 본능적 요구가 그동안 형성했던 좋은 습관들을

방해하고, 우리를 넓은 세상의 가치와 멀어지게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도덕적 위험을 인지해야 하며, 최선을 다해 그 위험과 맞서 싸워야 한다.

되도록이면 품위와 유머와 겸손을 보여주면서."


나이 듦을 고찰한 이 책은 위 구절로 요약된다.

책의 부제는 '현명하고 우아한 인생 후반을 위한 8번의 지적 대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세계 100대 지성에 두 차례 선정한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72) 시카고대 석좌교수, 그리고 법학자 솔 레브모어(66) 전 시카고대 로스쿨 학장이

늙음에 대한 여덟 가지 주제를 놓고 주제당 에세이 한 편씩을 써서 짝지었다.


글만 보면 누스바움이 레브모어보다 도발적이고 젊게 느껴진다. 여성이라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작용했을 수 있다.

'나이 들어가는 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란 글을 누스바움은 이렇게 시작한다.


"1970년대에 미국 여성은 자신의 몸을 사랑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검안경을 손에 들고 자궁경부를 들여다봤다.

우리는 자신의 몸이 불결하고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경이롭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 들고 있는 지금, 몸에 대한 그 사랑과 열정은 어디로 간 걸까?"


잭 니컬슨(왼쪽)과 다이앤 키튼이 노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한 장면.
잭 니컬슨(왼쪽)과 다이앤 키튼이 노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한 장면. /구글이미지


누스바움은 "한때 여성 혐오와 관련된 낙인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여성들은 이제 나이 듦에 대한 강력한 낙인에

그냥 굴복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노인의 성형수술도 지지한다.

"성형수술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주장들 속에 '못생기고 냄새도 나는 혐오스러운 노인'이라는 근거 없는 고정관념이 있다."

반면 레브모어는 늙어가는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쭈글쭈글하고 주름진 얼굴이 매끈하고 깨끗한 피부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주름살이 있으면 그 피부 뒤에 감춰진 인격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중년 이후의 사랑'을 다룬 장(章)에 눈길이 간다.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에는 청년 옥타비안과 사랑에 빠진 중년 여성 마르샬린이 나온다.

옥타비안을 또래의 젊은 여성에게 보내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마르샬린은 지혜롭게 나이 든 여성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누스바움은 비판한다. "이 오페라의 '교훈'에 따르면 여성에게 나이 듦은 굴복과 포기를 의미한다.

여성이 나이가 들면 그의 삶은 처녀 때와 마찬가지로 무조건 금욕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다이앤 키튼과 잭 니컬슨이 노년의 로맨스를 연기한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등 영화를 예로 들며

"노년의 사랑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거, 오랜 시간 동안 겪은 곡절 등을 사랑과 결합하기 때문에 그만큼 매력적"이라고도

한다. 레브모어의 관심사는 '노년기에는 더 모험적인 연애에 도전해야 하는가'다.

그는 "부유한 여성이 늘어날수록 커플 중 한쪽이 다른 쪽보다 훨씬 나이 많은 갭 커플(gap couple)과 같은 모험이

더 많아진다"고 예측한다.


마사 누스바움(왼쪽)과 솔 레브모어.
마사 누스바움(왼쪽)과 솔 레브모어. /어크로스


왕국의 후계 자리를 놓고 딸들의 효심을 시험하는 '리어왕'을 누스바움은 통제력을 포기할 준비가 안 된 노인이라 읽는다.

나이 먹으면 노쇠하고 의존적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리어왕은 자신을 신(神)과 비슷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다.

레브모어는 유산 분배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리어왕은 자식 중 누가 나라를 가장 잘 통치할 것인가, 또는 어떤 형태의 유산 분배가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질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없다." 책은 이밖에 노년의 우정, 회고, 빈곤 등을 다룬다.


"노년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자기중심적이 되니 이타성을 계발하라" 등 곰곰이 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조언들이 이어진다.

모두 공평하게 한 살씩 더 먹은 새해 첫 주에 새겨들을 만하다.

누스바움은 충고한다.

"나이 드는 이들은 감정조절에 신경 써라. 솔직함이 두려움, 짜증, 불만을 모조리 내뱉으란 뜻은 아니다."

 



책소개


나이듦에 대한 지적 탐구!

움베르토 에코,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포린폴리시》 선정 ‘세계 100대 지성’에 이름을 올린 시카고대 석좌교수

마사 누스바움과 로스쿨 전 학장 솔 레브모어, 두 사람이 때론 겹치고 때론 상반되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나이듦에 관한 다채롭고 풍부한 통찰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키케로의 《나이듦에 대하여》을 참조한 이 책은 60대에 들어선 두 친구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장은 나이듦을 다룬 에세이 두 편씩을 짝지어 놓았다.

자녀들에게 어떻게 공평하게 유산을 나눠줄 것이며 노년에 그들과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반면교사 삼아 해소해주고,

과거에 대한 회고를 통해 자기 인생 속 여기저기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이어붙이면서 우리 삶을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등 문학사에서 빛나는 작품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을 인용하며 제시하기도 한다.

두 저자는 서로의 글에 응답하거나 동의하기도 하지만 각자 다른 성격과 학문적 접근법을 지녔기에 다른 생각을

내놓기도 한다.

우정, 나이 들어가는 몸, 적절한 은퇴 시기, 나의 과거 등을 함께 생각하고, 은퇴하기 적합한 시점은 언제인지,

유산을 어떻게 적절하게 나눠줄 수 있을지 등 보다 실용적인 삶의 지침을 전한다.

또 노년의 경제적 불평등과 노인빈곤, 노인혐오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우리가 떠난 후에도 계속될

세상에 우리는 무엇으로 기여할 것인지를 물으며 나를 돌보는 것을 넘어 타인과 세상을 함께 돌보게 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목차


머리말: 지혜롭게 나이 들기 위한 지적 여정 


1장 나이듦과 우정
나이듦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키케로와의 가상 토론 / 마사
친구, 삶이라는 모험의 동반자 / 솔 


2장 나이 들어가는 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주름살이 매력적일 수 있을까? / 솔
우리 몸, 우리 자신을 돌본다는 것: 나이듦, 낙인, 그리고 혐오 / 마사 


3장 지난날을 돌아보며
과거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회고적 감정의 가치 / 마사
후회 대신 만족하는 삶 / 솔 


4장 리어왕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통제권을 상실할 준비 / 마사
유산 분배와 상속, 그리고 돌봄 비용 지불하기 / 솔 


5장 적절한 은퇴 시기를 생각한다
정년퇴직이 필요한 이유 / 솔
강제 은퇴에 반대한다 / 마사 


6장 중년 이후의 사랑
나이 드는 여성의 연애와 섹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거짓말, 셰익스피어의 바른말 / 마사
좀 더 모험적인 연애를 바란다 / 솔 


7장 노년의 빈곤과 불평등에 관하여
노인빈곤과 불평등의 해소 가능성 / 솔
인간의 역량이라는 관점에서 본 노인빈곤과 불평등 / 마사 


8장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나눔의 역설과 나름의 해결책 / 솔
나이듦과 이타성 / 마사 

감사의 말


[예스24 제공] 


책속으로


이 책은 존엄한 죽음이든, 다른 어떤 죽음이든 간에 죽음에 관한 책이 절대 아니다.

이 책은 현명하게 사는 법에 관한 책이다.

나이듦이란 무언가를 경험하고, 지혜를 획득하고, 사랑하고,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더라도 자기 모습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 p.8


나이가 들면서 우정 자체가 깊어지는 것과 함께 세상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는 것.

이것은 매우 귀중하며 다른 경로로는 쉽게 얻지 못하는 혜택입니다. --- p.44


나이듦에는 필연적으로 불행이 따라옵니다.

하지만 유머, 이해, 사랑은 필연적으로 따라오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제공하는 건 우정이죠. --- p.62


은퇴한 노인들은 드디어 자기 외모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때때로 그들의 주름살이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일정한 연령에 이른 사람들의 경우 쭈글쭈글하고 주름진 얼굴이 매끈하고 깨끗한 피부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주름살이 있으면 그 피부 뒤에 감춰진 인격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눈동자가 반짝인다면 나는 대화 중에 그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 사람의 옷과 장신구와 몸매에 눈길이 가는 것이 아니라. --- p.101


일반적으로 자아성찰은 가치 있는 일이며 완전한 사람이 되는 과정의 일부다.

우리가 과거에 했던 행동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일은 현재에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 p.170


우리 모두는 좋든 싫든 노년기에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될 때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징표를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리어와 닮은꼴이다. --- p.228


주로 정년퇴직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연령차별은 합리적인 규칙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을 근거로 한다.

그것은 다른 모든 차별과 똑같이 매우 비윤리적이다. --- p.291


나이 드는 여성의 관능적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철학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한다.

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아는 철학자 가운데 연인 또는 부부의 ‘노년기 사랑’이 가진 복잡한 속성에 대해

훌륭한 설명을 해준 이는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도 아니고 노년의 사랑에 대해 논의를 꺼리는

문화의 산물도 아니다. 이 점에서 철학은 문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추상적인 산문만 가지고는 노년기의 특이하고 변화무쌍하고 구체적인 사랑을 전달할 수 없다.

노년기의 사랑은 허풍 속에 진실한 감정을 담고 있다. --- p.320 -6장 중년 이후의 사랑


흔히 노년기에 이르면 역량을 상실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들 생각한다.

바로 그런 편견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토론에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 p.404

이제는 우리의 자손들만이 아니라 대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나눔은 우리가 처음 세상을 만났을 때보다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가장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 p.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