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9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의 역사 서재] 18세기 후반 인구 30%가 노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아마 한국 사회만큼 계층 상승욕이 강한 곳도 달리 없을 것이다.
웬만한 성취에는 만족할 줄 모르고, 더 위로 더 위로 올라가려 한다. 강렬한 신분 상승욕이다.
그러니 경쟁은 세계 최고로 치열하고 사회는 몹시 유동적(역동적)이다.
이게 점차 막히려 하니 당장 '헬조선!'의 절규가 터져 나온다.
이런 우리 사회의 특성은 많은 부분 조선 후기 사회와 닮아 있다. 조선시대는 현재 진행형이다'.
따라서 한국의 교양 시민이라면 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권내현의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어느 노비 가계 2백 년의 기록'(역사비평사)을 권하고 싶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조선의 신분제적 특징은 양반-상놈이라기보다는 단연 광범한 노비의 존재다.
왜냐하면 양반-상놈 비슷한 것은 중국, 일본에도 있었지만 노비제는 조선에서만 늦게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까지 무려 인구의 30% 이상이었다고 한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노비의 후손'일 것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큰 차별을 받는 예속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고대 로마나 미국 남부의 노예들하고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다.
노비들 중 어떤 이들은 토지 매매의 계약자이기도, 일가의 경영자이기도, 상업 활동의 주체이기도 했다.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 년의 기록
권내현 지음/ 역사비평사/ 2014/ 204 p
911.05-ㄱ524ㄴ/ [정독]인사자실/ [강서]2층
이 책에 나오는 김씨 성을 가진 노비 집안은 약 150년간에 걸쳐 노비에서 평민으로,
다시 평민에서 양반으로 신분 상승에 성공했다.
그걸 가능케 한 것은 그들의 경제력이었다.
18세기 이후 근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많은 수의 상놈·노비들이 슬금슬금 양반이 되었다.
정약용이 "온 나라 백성이 양반이 되려 한다"고 지적한 그대로다.
이 책은 그 모습을 실감나게, 흥미롭게 보여준다.
조선 후기 인구의 30% 이상을 노비들이 차지했다면, 그 사회에는 '노비 근성'이 충만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노력이나 운에 따라 신분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면?
사람들은 자기 신분이나 분수에 만족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전후좌우를 살피며,
때로는 기회주의적으로, 때로는 맹렬한 노력으로 신분 상승을 꿈꿀 것이다.
'노비 근성'과 신분 상승욕이라는 역사가 남긴 유산은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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