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2.23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의 역사 서재] '새로운 中華' 서양 문명에 대한 열정
중국과 조선, 그리고 중화
세계에는 언제나 문명의 중심지가 있었다.
그런 곳은 몇 군데 안 되며, 나머지 지역은 그 중심 문명에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중심의 우위를 인정하고 그런 문명이 되려고 맹렬하게 흡수하는 태도가 있는가 하면(보편주의), 객관적 기준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중심 문명으로 간주해버리는 입장도 있다(특수주의). 해방 후 한국은 전자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간혹 후자에 미련을 보여 왔다. 북한은 시종일관 후자를 고집해왔다. 그 결과는 지금의 현실이 잘 보여준다.
문명[中華]이란 무엇인가, 문명의 중심[中國]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 조선 후기 지식인들만큼 심각하게 고투한 경우는 달리 없을 것이다.
문명의 중심이 너무 가까이 있어, 한시도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택한 길은 보편주의였다.
문명은 중화에 있으며, 우리 조선도 그렇게 되자는 것이다.
문명의 내용이 같고, 그 주역도 동일할 때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1644년을 전후로 벌어진 명·청 교체는 조선인들에게 커다란 고민을 안겼다.
야만인이라고 여긴 여진족이 중화를 집어삼켰다. 그럼 우리 조선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서도 그들은 중화의 달성이라는
보편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명의 문명만이 중화라고 고집하는 이들도, 청의 신문명을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측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김영식의 '중국과 조선, 그리고 중화'(아카넷)은 이 문제에 대한 연구들을 요령 있게 정리한 위에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소중화주의도, 조선중화주의도, 실학도, 조선 후기의 과학기술 발달도 결국 '중화'를 향한 조선인들의 열망이라는
자장 안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중국과 조선, 그리고 중화 : 조선 후기 중국 인식의 전개와 중화 사상의 굴절
저자 김영식/ 아카넷/ 2018.12.06/ 516 p
그들에게도 어디까지나 외부 문명인 중화와,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민족적' 욕망보다는 문명화 열망을 우선순위에 올려놓았다.
조선인이 되기보다는 문명인이 더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 때문인지 곧바로 들이닥친
민족주의와 부국강병의 시대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런 태도는 대한민국에 기본적으로 계승됐다.
'새로운 중화'인 서양 문명에 대한 열정이 그것이다.
때때로 전근대적인, 혹은 국수주의적 반대가 민족주의란 이름으로 행해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서구화·선진화는 '민족'을 위해서라도 절실한 것이라는 믿음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굳건한 것 같다. 보편을 향한 신념이 특수에 대한 유혹을 거느리며 다스리는 것, 이게 길이다.
블로그내에서 같이 일을거리 :
신문·가스등·기차… 近代로 질주한 도쿄 (조선일보 2019.02.23)
메이지의 도쿄
호즈미 가즈오 지음|이용화 옮김|논형|382쪽|1만8000원
http://blog.daum.net/jeongsimkim/3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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