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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알풀’ 대신 ‘봄까치꽃’으로…자생식물에 고운 이름 붙인다

바람아님 2019. 3. 1. 07:57
[중앙일보] 2019.02.28 12:00
예쁜 모습과는 달리 '큰개불알풀(1980년 이창복)'이라는 민망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꽃을 앞으로는 '큰봄까치꽃'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는 한반도 관속식물 목록을 통해 새로운 이름을 제안했다.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예쁜 모습과는 달리 '큰개불알풀(1980년 이창복)'이라는 민망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꽃을 앞으로는 '큰봄까치꽃'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는 한반도 관속식물 목록을 통해 새로운 이름을 제안했다.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개불알풀'보다 '봄까치꽃'으로, '며느리밑씻개' 대신에 '가시모밀'로 불러주세요."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는 우리나라 자생식물과 외래식물 총 5392종류의 학명과 국명(우리말 이름)을 정리한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한반도 관속식물 목록'을 3월 1일 자체 누리집을 통해 공개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하는 식물 목록은 국가 생물 종 목록, 국가 표준식물 목록, 속(屬) 식물지를 기초로 작성했으며, 우리나라 자생식물 4420종류와 귀화종·식재종 등 외래식물 972종류가 포함됐다.
속 식물지는 한반도 자생 관속식물을 속(屬) 수준에서 개괄적으로 파악해 과(科)와 속의 특성, 학명과 국명, 종 목록 등의 정보를 종합·정리한 책이다.
 
이번에 공개하는 목록은 국제 명명(命名)규약과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 식물의 학명 표기를 대폭 수정했다.
 
특히, 식물의 우리말 이름인 국명은 먼저 발표된 이름, 널리 통용되는 이름을 선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맞춤법 적용과 비속어 배제 등을 우선 적용했다.
이에 따라 족두리를 닮은 꽃이 피는 '족도리풀'은 '족두리풀'로 수정했다.
'꼭두선이'는 '꼭두서니'로, '난장이붓꽃'은 '난쟁이붓꽃'으로, '방동산이'는 '방동사니'로 고쳤다.
 
난초과 식물의 경우 지네발난·풍란과 같이 우리말 뒤에는 '난'을, 한자어 뒤에는 '란'을 붙였다.
'큰제비란'은 '큰제비난'으로, '탐라난'은 '탐라란'이 됐다.
 
비속어를 포함한 '개불알풀'은 '봄까치꽃'으로, '며느리밑씻개'는 '가시모밀'로, '소경불알'은 '알더덕'으로, '중대가리나무'는 '구슬꽃나무'로 바꿨다.
또, '중대가리풀'은 '토방풀'로, '개중대가리'는 '개미밥'으로 바꿨다. 
           
'소경불알'로 불리는 이 꽃에는 '알더덕'이란 이름이 제안됐다. 소경불알은 1937년 정태현이, 알더덕은 1974년 박만규가 제시한 이름이다.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소경불알'로 불리는 이 꽃에는 '알더덕'이란 이름이 제안됐다. 소경불알은 1937년 정태현이, 알더덕은 1974년 박만규가 제시한 이름이다.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는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 대신 '가시모밀'이란 이름을 제안했다. 며느리밑씻개는 1937년 정태현의 논문에서, 가시모밀은 1949년 박만규의 논문에서 제시한 이름이다.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는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 대신 '가시모밀'이란 이름을 제안했다. 며느리밑씻개는 1937년 정태현의 논문에서, 가시모밀은 1949년 박만규의 논문에서 제시한 이름이다.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중대가리풀'에는 '토방풀'이란 이름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중대가리풀은 1949년 정태현이 붙인 이름이며, 1988년 김현삼 등은 토방풀로 이름을 붙였다.[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중대가리풀'에는 '토방풀'이란 이름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중대가리풀은 1949년 정태현이 붙인 이름이며, 1988년 김현삼 등은 토방풀로 이름을 붙였다.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이와 함께 한국산과 일본산 '왕벚나무'의 학명과 국명을 정리해 혼란을 피하도록 했다.
 
한라산에 자생하는 특산식물인 '제주 왕벚나무'는 '왕벚나무'로, 가로수로 널리 심어져 있는 '일본 왕벚나무'는 '소메이요시노벚나무'로 정리했다.
 
이는 두 벚나무 모두 서로 다른 부모 종을 갖는 잡종 기원이라는 최신 연구 결과를 종합, 학명도 왕벚나무는 프루누스누디플로라(Prunusnudiflora (Koehne) Koidz,)로, 소메이요시벚나무는프루누스 예도엔시스(PrunusyedoensisMatsum.)로 제시했다. 
          
제주도 한라산에 자생하는 특산식물 '왕벚나무'.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제주도 한라산에 자생하는 특산식물 '왕벚나무'.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전국에 가로수로 심겨진 '왕벚나무'는 일본산 왕벚나무인데, 이번 '소메이요시노벚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전국에 가로수로 심겨진 '왕벚나무'는 일본산 왕벚나무인데, 이번 '소메이요시노벚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은 "비속어가 들어간 이름은 전문가들도 논문이나 보고서에 기록하기 곤란하고, 방송이나 수업시간에 거론하기도 곤란한 게 사실"이라며 "이번 목록 발표를 통해 제안한 새로운 이름은 시민과 전문가들이 널리 사용하게 되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바꿔야 하나…" 반론도
하지만,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이름을 갑자기 바꾸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이웅빈 용인대 생명과학과 교수(전 식물분류학회장)는 "맞춤법이 달라지는 경우 그에 맞춰 식물 이름을 조금씩 고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옛부터 사용해온 이름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교육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 기존 이름을 괄호 안에 병기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며 "식물 이름을 반드시 하나만 써야 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현 소장은 "관련 학자와 관심 있는 일반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국명을 보완해 나가는 한편, 학명도 학계의 최신 연구결과를 반영해 지속해서 수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 관속식물 목록은 1일부터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으며, 사용하면서 발견되는 학명·국명의 오류 등에 대한 의견도 제시할 수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