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생활이 개선된다 하여 독립 만세를 불렀소"
3월1일의 밤 2000년대 초 대학 도서관을 훑다가 우리말로 번역된 3·1운동 당시 일경의 신문(訊問) 조서를 읽게 된 것이 이 방대한 책의 시작이었다. 그 속에서 저자는 우리가 안다고 했던 3·1운동과는 다른, 낯선 장면들을 만났다. 국문학도인 저자(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3·1운동을 파고들었다. 100년 전 그날 오후 태화관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운동이 낮의 시간을 차지했다면,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이 만세를 외치게 된 이 책 속 사연은 역사가 공식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밤의 이야기들이다. 거룩한 맛은 덜하지만 대신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꿈을 품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국권 회복의 대의 못지않게, 더 잘 살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욕망이 만세 에너지를 추동했다. 황해도에서 만세를 외친 홍석정은 검거된 뒤 "독립 만세를 부르면 조선 민족의 생활이 개선된다고 해서 참가했다"고 진술했다. 독립하면 일제가 수탈해간 토지를 균분(均分)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태극기를 든 이도 있다. 3·1 만세는 사회 개조를 꿈꾼 운동이기도 했다. 저자는 그 사례로 염상섭 소설 '만세전(萬歲前)'에 나오는 장죽 물고 점잔이나 빼는 아버지, 매 맞고 우는 아내, 종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무위도식하는 청년 등을 3·1운동과 더불어 사라져야 할 인간형으로 제시한다. 1910년대 국제사회에 가득했던 혁명의 기운, 강용흘과 이미륵의 망명 문학, 만세에 동참한 일본인 등 숱한 이야기가 천일야화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
미움 또한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소금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나희영 옮김|바다출판사|204쪽|1만3000원 오스트리아 빈에서 칸트 철학을 전공한 일본인 저자는 책 서문에서 가족들에게 미움받은 사연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1998년 빈에서 사고가 나서 목발을 짚은 아내가 병원에 함께 가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저자는 "일 때문에 바쁘다"고 쌀쌀맞게 거절했다가 원망을 사고 말았다. 다음 날은 사춘기 아들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저자는 "그렇게 반항할 거면 당장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쳤다. 결국 그해 말 저자는 집에서 쫓겨났다. 근처 호텔에서 석 달간 머물렀고, 이듬해 혼자 귀국했다. 저자는 40년간 서로 욕설을 퍼붓고 미워했던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미움'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나는 스스로 빠져 나오기 위해 미움을 연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뜻"이라고 고백한다. 미움의 8가지 원인을 미시적이고 체계적으로 구분한 대목이 흥미롭다. 상대가 자신의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질투와 경멸 등이다. 혼동하기 쉬운 질투와 동경(憧憬)의 감정을 세심하게 구분한 장도 설득력 있다. 상대의 몰락을 바라는 마음이 강할수록 질투에 가깝고, 그렇지 않으면 동경이라는 설명이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부부나 부모·자식, 친구나 직장 동료 간의 미움도 소중히 여기라고 조언한다. 미움을 외면하기만 하면 "인생이 단조롭고 무미건조해진다"는 것. 차라리 "미움을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소금으로 유효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라고 제안한다. |
'人文,社會科學 > 책·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北 주민이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이유 (0) | 2019.03.09 |
---|---|
[북카페] '소년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외 (0) | 2019.03.05 |
[논설실의 서가] '沒入독서'로 이끄는 의외의 결말 (0) | 2019.03.05 |
[이코노 서가(書架)] 한국만 경제 기적… 그 뒤엔 기업가들 '창조형 혁신' 있었다 (0) | 2019.03.04 |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읽기] 직장 민주주의를 고민할 때 (0) | 2019.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