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03.06. 00:26
'남북경협 통한 우리의 중재자 역할'은 오해
그리고 하노이의 세 가지 의문과 세 가지 오해. 먼저 첫 의문. “과연 실무 협상을 하긴 한 걸까.” 북한은 ‘영변의 알려진 시설’로 딜을 끝내려 했다. 미국은 영변 390개 건물 전체와 영변 외 시설을 문제 삼았다. 폐기의 대상은 협상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그런데 이를 조율 않고 정상회담으로 넘겨 이 지경이 됐다. 실무진이 핫바지였거나 정상에 책임을 떠넘긴 것으로밖에는 해석이 안 된다.
둘째 의문은, “과연 3차 회담은 가능할까”다. 양측은 결렬 후 협상 카드를 다 깠다. 향후 타협할 수 있는 여지를 서로 없앴다. 김정은의 일그러진 표정, 탱탱 부은 눈은 ‘트럼프 이후’로 향할 것이다. 트럼프도 마찬가지. 워싱턴은 “박차고 나오길 잘했다”로 굳어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이 백기를 들고나오지 않는 한 “다시 북한을 설득시켜 보겠다”고 나설 가능성, 필요성은 제로에 가깝다. 접촉은 있어도 협상은 힘들다.
마지막 의문. “왜 우린 이런 결과를 예상 못 했나.” 청와대는 회담 결렬 30분 전까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참모들과의 TV 시청, 종전선언 운운하며 들떴다. 정의용-볼턴 NSC 라인이 몇달 째 ‘먹통’인 것은 쉬쉬했다. 이어지는 의문. 볼턴은 왜 방한을 취소하고 하노이에 있었을까. ‘빅딜’내용을 한국에 사전에 알릴 경우 정보가 북한에 미리 샐 것을 경계한 건 아닐까. 이런 동맹간의 불신은 과연 복구 가능한 걸까.
오해(혹은 곡해)도 확인됐다. 첫째, 북한에 대한 오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전 세계에 대리 선전해왔다. 국민은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불확실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미국이 단계적 접근 아닌 빅딜을 들이민 이유다. 둘째는 미국에 대한 오해. 우리 일부 언론, 그리고 김정은은 트럼프가 노벨상 같은 개인적 욕심 때문에 성과에 집착할 것으로 오해했다. 물론 트럼프에겐 “시스템보다 개인의 독단으로 외교를 결정한다”는 적잖은 비판이 제기되어 왔었다. 하지만 이번엔 ‘개인’ 트럼프가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도록 하는, ‘시스템’이 작동했다. 워싱턴엔 비핵화 세력(트럼프)과 비핵화 방해세력(워싱턴 조야)이 있다는 오해와 편견은 이번에는 틀렸다. 하노이의 미국팀은 모두가 ‘비핵화 의심세력’이었다.
마지막은 ‘우리’에 대한 오해. 남북경협을 통해 중재자가 될 것이라 자신했지만 오해였다. 종전선언·금강산·개성공단 모두 ‘곁가지’였다. 비핵화가 본질이었다. 우리의 역할도 답이 나왔다. 냉엄한 현실을 목도한 김정은에게 완전한 비핵화, ‘영변+α(알파)’를 설득하는 길밖에 없다는 걸. 그런데도 여전히 북한에 줄 ‘당근’에 집착하고 서두르는 모습이다. 하노이의 교훈은 덧없이 미세먼지 속으로 사라져가는 걸까. (하노이에서)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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