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진 칼럼] 남북, 트럼프를 제대로 읽어라
한국일보 2019.03.07. 18:02
南北, 낙관적 접근에 ‘트럼프캐릭터’ 깜빡 트럼프, 이익 없으면 협상판 깰 만한 인물 美정치 상황, 트럼프 강온 전략 냉철히 봐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돌아왔다. ‘선 핵 폐기, 후 제재 해제’라는 리비아식 해법의 북한 적용을 주장해온 강경파.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조차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전후부터 북핵 이슈에서 물러나 있도록 했던 인물.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확대 정상회담에 그를 배석시켰고, 결국 그의 입장에 섰다. 이후 볼턴 보좌관은 연일 ‘빅딜 성사 전 노딜’ ‘압박ㆍ제재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나 교감 없인 불가능한 행보다. 반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협상팀 평양 파견 용의 발언 등 유화적 자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형적인 강온 양면 전략의 재현이다. 남북은 싱가포르 선언 후 트럼프 대통령 협상 전략의 한 면만 보고 협상 결과에 낙관론적 입장을 취했다. 그가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할 외교 성과를 원하고, 따라서 하노이에서 진전된 비핵화 합의안에 서명할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대응했다. 하지만 민주당 하원 장악, 경제지표 악화, 국경 장벽 논란, 코언 청문회 등으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빅딜 아니면 노딜’, 회담 결렬이었다. 통상의 정상회담 관례를 무시한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가능했던 장면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주도권을 쥐게 됐다. 북한은 5개 유엔 제재 해제를 요구해 대북 제재 효과, 즉 북한의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토로하고 말았다. 미국을 향해 다시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을 할 수도 있지만 경제 발전을 앞세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식으로 비핵화의 허들을 높인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에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비핵화 조치를 내놔야 하는 입장이 됐다. ‘긍정’과 ‘찬사’로 점철된 트럼프 대통령의 언변과 실무협상 내용을 과대 해석, 그가 수용 가능한 비핵화 수준을 낮춰 잡음으로써 더 큰 것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는 우를 범한 것이다. 우리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청와대, 정부 관계자들은 하노이 회담 직전까지 ‘스몰딜은 입구, 빅딜은 출구’라는 등 한결같이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 종전선언 맞교환 가능성을 예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3일 전 회담 성공을 전제로 ‘신한반도체제 구상’을 공개했고, 회담 하루 전에는 남북 경협을 염두에 두고 통상교섭본부장을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했다. 청와대는 회담 결렬 30분 전까지도 문 대통령의 합의문 서명식 TV 시청 예정을 알렸다. 참사도 이런 참사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지금도 청와대, 정부 주변에서 회담 결렬 이후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인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딜’ 결정은 공화ㆍ민주 양당의 지지를 얻으며 백악관의 대북 강경 기조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NSC 회의에서 “남북 협력 사업의 속도감 있는 준비”를 지시했고, 통일부 장관은 미국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방안 협의 방침을 보고했다. 누가 봐도 미국 내 기류와는 맞지 않는다고 느낄 만한 대목이다. 북미ㆍ남북 관계가 함께 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바로 지금이 남북 관계 개선 카드를 꺼낼 때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따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이 북미 협상의 촉매제가 되게 하기 위해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을 거론한 것이라 해도 너무 조급하고 안이하게 비치는 것은 분명하다. 하노이 회담 결렬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야말로 ‘수틀리면’ 정상회담도 깰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의 리더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 줬다. 초유의 톱다운 방식으로 북미 협상을 이끌어온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반대로 협상 결과가 미국의 이익,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회담 판 자체를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보여 줬다. 남북 모두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과 변수들까지도 면밀히 고려하면서 희망과 기대가 아닌 냉정한 현실 평가에 근거한 북미 협상과 남북 관계 개선을 진행해 나가야 하는 이유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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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文 정권, 김정은과 공동 운명체 되고 있다
조선일보 2019.03.07. 03:17
'김정은 비핵화'는 실체 없는 버블 작전주
김정은株로 큰돈 번 文 정권, 아예 올인했다 코 꿰인 형국
지금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를 빼고 세계에서 하노이 미·북 회담을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정부가 딱 둘 있는데 그게 한국 문재인 정부와 북한 김정은 정권이라고 한다.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이 내놓은 영변 시설 폐기에 대해 엄청난 진전이라고 주장하는 정부가 세계에 단 둘 있는데 그게 문 정권과 김 정권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대북 제재를 해제하자고 주장하는 단 두 정권이 바로 문 정권과 김 정권이다. 회담 결렬 뒤 트럼프 협상팀을 비난한 것도 문재인과 김정은 두 정권 사람들뿐이다.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의 대변인을 맡고 나선 단 한 사람이 문 대통령이고, 김정은의 유일한 호위 무사도 문 대통령 단 한 사람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김정은을 거의 '위인'으로 칭송하는 방송이 단 두 개가 있는데 한국의 정권 방송과 북한 방송이라고 한다.
미국이 문 대통령에게 미·북을 중재해달라고 했더니 북한에 핵 포기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미국을 설득해 대북 제재를 풀자고 한다. 대북 제재가 먼저 없어지면 김정은이 무엇 하려고 핵을 포기하나. 문 정권은 모든 문제에서 '북한'과 '김정은'이 최우선이다. 심지어 독립 유공자 오찬에서도 "독립 유공자 발굴을 북한과 함께 하겠다"고 한다.
뜻깊은 3·1절 100주년 기념 연설에서조차 난데없이 '빨갱이' 얘기가 나왔다. '빨갱이'도 결국 북한과 관련된 문제다. 정권 초에 그토록 건국 100년을 외치더니 갑자기 쑥 들어갔다. 북한이 '건국 100년'이란 말을 싫어해서 그렇다는 말이 파다하다. 스포츠계 최우선은 남북 단일팀, 남북 공동 개최다. 철도계는 남북 철도 연결, 도로도 남북 도로 연결이 최우선이다. 관광 얘기는 금강산 관광뿐이고, 공단은 위기에 빠진 한국 공단이 아니라 개성공단 얘기뿐이다. 시중에선 이런 문 정권에 대해 대통령의 구호 '사람이 먼저다'에 빗대 '북한 사람이 먼저다'라고 한다. 북한 신경 쓰는 것의 10분의 1만 미세 먼지 좀 챙겨달라는 말도 나온다.
어느 회사가 실제론 껍데기뿐인데 내용 없는 호재를 만들어 주가를 띄우는 것을 '작전주' '테마주'라고 한다. 지금 '김정은 비핵화' 주식이 바로 버블(거품)뿐인 작전주다. 미 정보 당국 수장 전원이 '김정은은 비핵화 뜻이 없다'고 증언한 것은 그게 팩트(fact)라는 뜻이다. 작전주도 투자를 잘하면 돈을 버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 정권은 김정은 작전주로 너무 큰돈을 벌었다. 지지율이 90%에 육박하고, 어느 지역에선 '세종대왕' 소리까지 듣고, 지방선거는 석권했다. 그래서 가진 돈을 김정은 주식에 전부 쏟아붓는 올인을 했다. 한 주식에 올인하면 원하든 원치 않든 그 껍데기 회사와 공동 운명체가 되고 만다. 그 회사의 대변인, 호위 무사로 나설 수밖에 없다. 지금 문 정권과 김정은은 그런 공동 운명체가 돼가고 있다. 문 대통령, 민주당만이 아니라 한국의 TV·라디오 방송까지 김정은과 공동 운명체로 엮여가고 있다.
남북은 화해하고, 교류하고, 통일해야 한다. 그 대전제는 민족을 말살할 수 있는 북 핵폭탄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 왕조가 북한 주민의 언론·출판·집회·결사·신체·거주이전 등 인간 최소의 권리에 대해 최소한 중국 정도라도 인정해야 한다. 그게 없는 북한은 핵 가진 지옥이다. 이번 하노이 회담을 통해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뜻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핵 포기를 진짜로 결단한 사람은 빅딜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이 시점에서 한국 대통령은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작전주에서 한 발을 빼고 상황을 냉정하게 다시 봐야 한다. 주가에서 거품을 뺄 때라는 뜻이다. 그런데 반대로 거품을 지키고 더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정권 재창출 때문인 것 같다. 정권을 잃는 경우에 대한 불안 공포가 너무 크다. 그래서 김정은 작전주가 정권 재창출 밑천이 될 것으로 믿고 올인했다가 코가 꿰였다. 주식 버블이 터지면 같이 죽는 공동 운명체가 돼버린 것이다. 비핵화와 상관없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에 목을 매는 것은 거품을 꺼뜨리지 않으려는 목적 하나뿐이다. 이들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본다. 필요한 것은 비핵화가 아니라 '버블'이다. 그런데 미국이 거품에 찬물을 끼얹으니 분노하는 것이다. 지금은 말로만 불만이지만 정말 거품이 꺼지려 하면 투자자들이 증권사 객장에서 난리 피우는 것과 같은 행태가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이 투자를 잘못해 쪽박을 차면 그 개인의 책임이다. 그런데 정권이 김정은 거품 주식에 매달리다 버블이 터지면 5100만 국민이 함께 쪽박을 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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