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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44] 친·인척 숙청

바람아님 2013. 12. 17. 09:39

(출처-조선일보 2013.12.17.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북한에 또다시 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북한 정권의 제2인자였던 장성택이 중앙정치국 확대회의 현장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체포된 지 나흘 만에 처참하게 사형당했다. 북한에서 공개 처형이란 전혀 새로울 게 없지만 장성택은 김정은의 고모부라는 점에서 충격이 남다르다. 물론 피를 나눈 친척은 아니고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에 불과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족처럼 가까이 지낸 고모부를 그처럼 잔인하게 처형할 수 있을까 그저 경악할 따름이다.

평생 개미를 연구하며 그들의 냉철한 합리성에 늘 탄복하며 살았지만 그들의 행동 중에서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 게 하나 있다. 이미 지구의 거의 모든 표면을 장악하고 있는 지극히 성공적인 곤충인 개미 세계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강대국 틈새에서 건국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여왕개미들이 선택한 전략은 다름 아닌 동맹 제휴이다.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날개를 끊어내고 밀폐된 공간에서 피하 지방과 날개 근육을 분해하여 주야불식 일개미를 키워본들 주변 국가들에 대항할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하기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여러 여왕개미가 함께 알을 낳아 키우면 짧은 기간에 상당한 병력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동맹 제휴는 주변 국가들과 경쟁하는 데는 확실히 유리하지만 필연적 내부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동맹한 여왕개미 중 결국 단 한 마리만 등극할 수 있기 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정쟁을 피할 길은 없다. 일단 천하를 평정하고 나면 일개미들은 대대손손 나라를 이끌어줄 여왕을 뽑는데, 모든 여왕개미가 알을 낳아 일개미를 키웠기 때문에 이 숙청 과정에서 여왕개미 대부분이 자기 딸에게 물려 죽는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진다. 두뇌가 가작(假作)이라 이런 무지몽매한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개미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종종 사람으로 태어난 걸 고마워하곤 했다. 
그런데 두 눈 부릅뜨고 자기 고모부를 조리돌림하고 처형하는 김정은을 보며 개미 같은 버러지보다 나은 게 무언가 자문한다. 
아, 내 입으로 사랑하는 개미를 버러지에 비유하다니.


**게시자 주 - 가작(假作 - 완전하지 않게 임시적으로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