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1.03.07.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오늘(8일)은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기념일이다. 1910년 독일의 사회운동가 클라라 제트킨이 제안하여 이듬해 3월 19일 오스트리아·덴마크·독일·스위스에서 첫 행사를 개최하며 시작한 것을 훗날 유엔이 1857년과 1908년 3월 8일에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과 지위 향상을 위해 벌인 시위를 기념하며 그날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하여 오늘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2005년 3월 2일에야 비로소 호주제 폐지에 관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지만, 여성의 참정권 획득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 아니었다. 1948년 제헌헌법에 의해 남녀의 참정권이 공히 인정된 것은 뉴질랜드 1893년, 호주 1902년, 미국 1920년, 영국 1928년에 비하면 많이 늦었지만, 이탈리아 1945년과 프랑스 1946년에 견주면 그리 뒤지지 않았다. 스위스 여성들이 1971년에야 참정권을 얻은 것에 비하면 무려 23년이나 빠른 일이었다.
세계 여성의 날 제정은 많은 나라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과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적지 않은 나라에서는 어머니날과 밸런타인데이와 뒤섞이며 그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선물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변질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 여성의 날을 따로 기념하고 있지만 밸런타인데이는 누구의 계략인지 모르나 참으로 이상하게 꼬여 있다. 서양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남성이 여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기로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정반대로 되어 있다. 그리곤 왠지 꺼림칙했던지 '화이트데이'라는 정체불명의 날을 따로 기념하며 초콜릿을 받은 남성이 여성에게 호의를 되돌릴 수 있게 해주었다.
사소한 일이라고 치워버릴 수도 있겠지만 바로 이런 사소함이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의 남녀평등지수 발표에서 조사 대상 134개국에서 우리나라가 104위를 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화이트데이는 1978년 일본 후쿠오카의 한 제과회사가 마시멜로를 팔아먹기 위해 시작하여 기껏해야 일본,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나 지키는 기념일이다. 다음 주로 다가온 화이트데이에 한 달 전에 준 초콜릿을 되돌려받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할 우리 여성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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