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르치는 일을 해왔지만 새 학기를 맞을 때면 언제나 설레고 두렵다. 이번 학기에는 또 어떤 학생들을 만나게 될까 설레고 그들에게 내가 정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두렵다. 어느 가족이든 그해에 입시생이 한 명이라도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질 자체가 달라진다. 어쩌다 우리는 이처럼 교육에 목을 매고 사는 걸까?
불과 이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국제동물행동학회에서 동물의 학습능력을 운운하면 그야말로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정말 다양한 동물에서 학습이 이뤄지고 있다는 수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 우리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새와 곤충은 물론, 물속에 사는 편형동물인 플라나리아도 배울 줄 안다. 플라나리아로 하여금 T형 미로 위를 기어가게 하고 갈림길에 도달할 때마다 한쪽에서 가벼운 전기자극을 주는 실험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더 이상 전기자극을 주지 않아도 그 지점에 가까워지면 알아서 반대쪽으로 방향을 튼다. 좁쌀보다도 훨씬 작은 두뇌를 지닌 그들이지만 자극에 관한 정보를 입력해 두었다가 그걸 검색해내 적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동물들도 배우는 건 분명해 보이는데 과연 그들도 가르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의 경우를 보더라도 견과의 단단한 껍데기를 돌로 내리쳐 깨 먹거나 흰개미굴에 나뭇가지를 집어넣어 일개미들이 그걸 물어뜯으면 살며시 빼내어 훑어 먹는 테크닉 자체는 분명히 전수되지만 애써 다른 침팬지를 붙들고 앉아 가르쳐주는 모습은 관찰된 바 없다. 엄마 침팬지는 자식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런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할 따름이다. 이제 곧 둥지를 떠나야 할 새끼에게 어미 새도 그저 끊임없이 나는 모습을 보여줄 뿐 결코 다그치지 않는다. 동물 세계에는 배움은 있되 가르침은 없어 보인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학습해야 하기 때문에 가르침이란 과정이 생겨났겠지만 스스로 배우려 할 때 훨씬 학습 효과가 높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짜고짜 가르치려 드는 우리의 교육법이 과연 최선일까? 최근 들어서야 우리는 드디어 '스스로학습' 또는 '자기주도학습'을 부르짖고 있지만 다른 동물들은 이미 수천만년 전부터 하고 있던 일이다.
(출처-조선일보 2011.02.28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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