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세계는 전쟁이 그치지 않는 아수라장이었다. 당시 패권을 잡고 있던 아테네는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힘을 합쳐 동맹군을 유지해야 한다며 각국으로부터 군사비를 받아냈다. 명분은 그럴듯했지만 사실 이는 제국주의적인 착취와 다르지 않았다. 아테네 문화의 황금기는 주변 국가들의 세금으로 이룬 셈이다. 이웃 강국 스파르타가 여기에 저항하여 급기야 두 국가 사이에 전운이 감돌았다.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는 이 아비규환의 사태를 막을 수는 없을까?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내놓은 안은 실로 절묘하기 짝이 없다. 부드러운 여성들의 힘으로 남성들의 폭력성을 누르자는 것이다. 다름 아니라 그리스의 모든 남성들이 전쟁을 중단하는 그날까지 여성들이 동침을 거부하자는 것! 어느 날 밤, 아테네의 여인 뤼시스트라테가 발의하여 각국 여성 대표들이 모여 섹스 스트라이크를 결의한다. "살살 약만 올린 후 절대 해 주지 말자"고 만방의 여인들이 약속한 그날 이후, '아프로디테의 의식'이 중단된 그리스 세계의 모든 남자들은 비참한 고통 속에 신음하며 지내게 된다. 폭력밖에 모르던 무식한 남자들은 끝내 국제적인 여인들의 연대에 항복하고, 이 땅에 세계 평화가 찾아온다.
기원전 411년에 초연된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라는 희극의 내용이다. 이는 단지 평화를 염원하는 작가의 공상에 불과할 뿐, 이 발칙한 상상을 누군가가 실제로 실행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시대에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는 여걸이 바로 그 방법을 사용하여 평화를 지키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리머 보위(Leymah Gbowee, 1972년생)는 비폭력 평화운동에 헌신한 실천가다. 참혹한 내전 와중에 소년병들의 심리치료를 수행하던 그녀는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편과 성관계를 하지 말자는 운동을 벌였고, 기독교도와 무슬림 여성들 모두로부터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냈다. 변화를 이루려면 여성의 힘, 어머니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실제 2003년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종식되고 그 후 아프리카 첫 여성 대통령(엘런 설리프, 올해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이 당선된 데에는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이 큰 몫을 했다. 그녀의 섹스 스트라이크 운동은 자칫 웃기는 이야기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참혹한 전쟁과 죽음의 땅에서 평화를 지키려는 진지한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