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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02] 개성(personality)

바람아님 2013. 12. 19. 09:20

(출처-조선일보 2011.03.14.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바야흐로 개성이 중요한 시대이다. 아류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연예계와 광고업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는 면접과 수업 시간에도 튀어야 한단다. 그래서인지 심리학은 오래전부터 개성을 매우 중요한 주제로 삼아 많은 연구를 해왔다. 그런데 여기에 최근 동물행동학자들이 덤벼들었다. 동물들의 개성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학술지 〈발생심리생물학〉 최신호에 상당히 눈에 띄는 논문이 있어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련다. 몸길이가 5mm 남짓의 작은 곤충인 진딧물에도 개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독일 생물학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땅으로 뛰어내리는 진딧물과 그렇지 않은 진딧물이 있단다. 게다가 이러한 성향이 반복된 실험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진딧물들은 모두 한 암컷의 처녀생식에 의해 태어나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개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렷한 개성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도대체 넌 누굴 닮아서 이 모양이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얘기이리라. 우리는 은연중에 개성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고 믿고 있다. 최근 연구결과들을 종합해보면 동물 개성의 변이 중 20~50%만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나머지는 발생 과정의 환경과 학습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같은 집에서 함께 큰 형제자매인데 하는 짓이 때로 남보다 더 다른 걸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면 이번 진딧물 연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배에서 태어난 강아지나 고양이들을 여럿 길러본 사람이라면 동물들도 제가끔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동물행동학자들은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지닌다. 그동안 주로 척추동물 위주로 진행돼온 동물 개성의 과학적 연구가 이제 무척추동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다만 영어권 학자들은 용어 때문에 적이 불편해한다. 동양권 학자들이 개성(個性)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들은 'personality'라고 부르는데, 이는 특별히 사람을 지칭하는 'person'에서 파생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용어부터 대놓고 의인화(擬人化)의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적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