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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34] 인간과 동물

바람아님 2013. 12. 20. 10:35

(출처-조선일보 2011.10.28.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멧돼지를 비롯한 야생동물이 시골과 도시에 출몰하여 피해를 주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서울 올림픽대로에 멧돼지가 뛰어들어 차에 받혀 죽는 사고도 일어났다. 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야생동물이 인간 세계를 침범한 일이지만, 동물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무단 점령한 결과일 것이다.

약 만 년 전인 구석기시대까지만 해도 생태계 전체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 인구밀도는 2~3 ㎢당 한 사람 정도여서 곰과 유사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고대 제국의 역사를 보면 용맹한 군주들이 직접 사냥에 나서 사자나 호랑이, 코끼리를 잡았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만큼 야생동물들이 인간 세계 근처에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거주 구역이 확대되면서 동물들과 충돌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곰처럼 자기 영역에 강하게 집착하고 도망가지 않는 종이 큰 문제였다. 서유럽의 경우 중세 시대를 지나는 동안 곰은 평원 지대 대부분에서 사라지고 산악지대에만 남게 되었다. 곰보다 훨씬 더 위험한 동물은 늑대였다. 집단으로 움직이는 데다가 행동이 빠르고 번식력도 좋은 늑대는 퇴치가 쉽지 않은 동물이었다. 섬나라인 영국에서는 19세기 초에 늑대가 완전히 퇴치되었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늑대의 위협이 지속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괴물처럼 큰 늑대가 시내로 들어와 사람을 해쳤다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18세기 후반에도 프랑스에서는 연평균 50명 정도가 늑대에게 잡아먹혔는데, 주로 어린아이와 노인들이 희생되었다. 유럽의 민담에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정부가 '늑대퇴치대(louveterie)'를 운영해야 할 정도였다.

인간과 동물 간 영토 싸움에서 완전히 인간 쪽으로 세가 기운 것은 사실 비교적 최근 시기인 19세기 중반 이후라 할 수 있다. 속사 총기의 개발이 여기에서 큰 공헌을 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늑대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사자가 멸종 위기에 몰렸다. 이제 이름도 생소하게 된 아시아사자는 인도 서부의 깊은 숲속에만 일부 남아 있다. 이러한 동물들의 멸종 사태는 20세기 후반부터 진정됐다. 인간만이 지구상에 홀로 사는 것이 아닐진대 사람도 살고 멧돼지도 사는 참신한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