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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 성화 속 성모, 불화 속 부처… 공통점 있다?

바람아님 2013. 12. 22. 10:22

(출처-조선일보 2013.09.12. 이명옥 | 사비나 미술관 관장)


주요 인물 크게 그리는 동·서양 종교화
익숙한 사물의 크기 변형한 '마그리트', 진짜 같은 가짜 얼굴 크게 만든 '론 뮤익'
예술가들이 크기에 관심 갖는 이유… 시선을 집중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이죠

중세시대 유럽에서 그려진 기독교 미술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물의 크기가 중요도 순위에 따라 다르게 그려졌어요.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인 등 그림 중심에 있는 주요 인물은 크게 그렸지만, 주변 인물은 작게 그렸어요. 즉 그림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인물의 크기만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었죠. 

작품 1 - ‘성삼위일체의 성모(마에스타)’ 사진
작품 1 - '성삼위일체의 성모(마에스타)' 치마부에, 1280~1290.
<작품 1〉은 13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치마부에(Cimabue)의 대표작이에요.
그림의 주연은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앉히고 옥좌에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예요. 조연은 옥좌 아래 3개의 아치 밑에 있는 예언자 네 명과,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배치된 천사 여덟 명이고요. 성모 마리아는 가장 크게, 나머지 인물은 작게 그려졌네요. 왜 주요 인물은 크게 그렸을까요? 크게 그리면 사람들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데다 누가 주인공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거든요. 현대인에게는 크기로 인물의 중요도를 결정했던 중세 그림이 조금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숨은 뜻이 있어요.


기독교가 유럽 사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중세에는 그림이 최대한 단순하고 분명하게 그려졌어요. 당시 대다수 사람은 글을 읽지 못했어요. 성서를 읽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서 이야기를 단순 명료하게 그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요.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종교적인 내용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인물의 크기로 주연과 조연을 구별한 거예요.
작품 2 - '영산회상도' 사진
작품 2 - '영산회상도', 1741.
신분에 따라 인물의 크기가 달라지는 사례는 불교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작품 2〉는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한국미술박물관이 소장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입니다. 영산회상도는 부처가 인도의 왕사성 부근 영취산에서 여러 보살과 제자들에게 법화경의 가르침을 전하는 법회 장면을 그린 그림을 말해요. 
<작품 1〉〈작품 2〉를 비교해 볼까요? 공통점이 많네요. 
부처는 성모 마리아처럼 그림 한가운데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어요. 연꽃 대좌 아래 불단 앞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대칭을 이루며 서 있고 부처의 오른편과 왼편에는 보살과 제자, 천선녀(天仙女)가 있네요. 중심인물인 부처를 크게 그리고 주변 인물을 작게 그린 것이나, 주연인 부처를 조연이 빙 둘러싼 것도 기독교 성화와 같아요. 
두 그림은 동서양의 종교화에서 인물의 크기가 중요도에 따라 크거나 작게 그려지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작품 3 - '개인적 가치' 사진
작품 3 - '개인적 가치' 마그리트, 1952.
벨기에 화가 마그리트(Magritte)는 상상력을 길러주는 도구로 크기를 활용하고 있어요. 
<작품 3〉에서 머리빗, 유리잔, 면도 솔의 크기는 침대나 옷장보다 더 큽니다. 성냥개비와 세숫비누의 크기도 카펫의 절반 정도로 커졌어요. 왜 작은 물건은 크게, 커다란 가구는 작게 그렸을까요? 크기를 변형하면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이죠. 평범한 머리빗도 거대한 크기로 표현하면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죠. 그 순간 아이디어가 반짝 떠오르면서 상상력이 발동하는 겁니다. 마그리트는 익숙한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을 길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크기를 변형한 거죠.

작품 4 - '마스크 II' 론 뮤익, 2001./Getty Images/멀티비츠


호주 출신의 조각가 론 뮤익(Mueck)도 거대한 크기로 혼란을 연출해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인체에서 떨어져 나온 커다란 남자의 잠든 얼굴이 좌대에 놓여 있어요. 

<작품 4〉 놀랍게도 깊은 잠에 빠진 거인의 얼굴은 피부, 모공, 머리카락, 눈썹, 수염, 핏줄, 잔주름까지도 진짜 사람과 똑같아요. 크기만 제외하고는 말이죠. 이 거대한 얼굴은 론 뮤익이 자신의 43세 때 얼굴을 조각으로 만든 겁니다. 론 뮤익은 텔레비전 아동극 인형 제작자, 영화 특수효과 감독 출신의 조각가예요. 유리섬유와 실리콘을 이용해 실물과 똑같은 인형을 만들었던 과거의 경험과 기술을 응용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조각을 만드는 거죠. 론 뮤익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은 두 번 크게 놀라게 됩니다. 첫 번째로 거대한 크기에 깜짝 놀라 충격을 받아요. 두 번째는 크기만 제외하면 실제 인물과 똑같아 또 한 번 놀라죠. 진짜 같은 거대한 가짜 얼굴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연민을, 어떤 사람은 인생의 고단함을, 어떤 사람은 유머와 해학을, 어떤 사람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경험하죠.

이제 예술가들이 왜 크기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한 대답을 알게 됐어요. 

크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죠.

[함께 생각해봐요]

오늘 함께 살펴본 벨기에 화가 마그리트는 방 안의 사물 크기를 변형해 그림을 그렸어요. 여러분이 만약 마그리트처럼 방 안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물건을 크게, 어떤 물건을 작게 그리고 싶나요? 직접 방 안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세요.



<<호주 출신의 조각가 론 뮤익(Mueck) 작품 - 게시자 추가 이미지>>





<<불로그내 참고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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