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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흔들면 흔들리는 나라/[이하경 칼럼] 줏대없이 강대국 눈치나 보면 무시당하다 죽는다

바람아님 2019. 6. 18. 08:52

[박제균 칼럼]흔들면 흔들리는 나라

동아일보 2019-06-17 03:00
 
美中 ‘약한 고리’ 韓, 집중타 우려… 美에 밀착한 日, 對中관계 최상
美中 넘나들다 둘 다 잃을 처지… ‘한미동맹 不動’ 中 인식시켜야
흔든다고 흔들리면 치욕의 길
박제균 논설주간

한 놈만 팬다.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으로 유명해진 말이지만, 그 ‘한 놈’은 누가 될까. 굳이 병법을 들먹이지 않아도 적진(敵陣)의 가장 약한 고리를 깨부숴 전열(戰列)을 무너뜨리는 건 전술의 기본이다. 조짐을 드러낸 미중(美中)의 패권전쟁. 그 거대한 전쟁에서 자칫 한국이 ‘약한 고리’로 전락해 두 강대국으로부터 집중타를 맞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요즘이다.

일본을 보자. 아베 신조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아부 외교’를 넘어 ‘아양 외교’ 수준이다. 그럼에도 중국과의 관계는 역대 최상급이다. 한국은 어떤가. 화웨이 사태에서 보듯, 미국과 중국이 번갈아 가며 ‘저쪽 편에 서지 말라’고 경고장을 날리는 형편이다. 지금은 구두 경고 수준이나, 두 강대국의 겁박이 현실화되는 순간 나라 자체가 갈지자로 휘청거릴 것은 안 봐도 훤하다.

중국은 일본에 대해선 헛된 기대가 없다. 당연히 미국 편으로 여긴다. 적진에 속해 있지만, 양자(兩者) 관계에서 성의를 보이고 국력도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볼까. 흔들면 흔들리는 나라로 보일 수밖에 없다. 2000년 마늘 분쟁 때 그랬고, 가까이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도 그랬다. 국력이 일본만 못해서? 그보다는 위정자들의 원칙 없는 대응이 대한민국을 ‘약한 고리’로 만들어버렸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미중 패권전쟁은 앞으로 우리가 국가의 명운(命運)을 걸고 헤쳐 나가야 할 외교적 도전이다. 그 미증유(未曾有)의 전쟁에서 어느 편에 설지는 자명(自明)하다. 하지만 그 자명한 이유들을 잊은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요약해보면….

주요기사

첫째, 미국은 한국의 동맹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3조를 보자.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공통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 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이렇게 한국과 미국은 같은 편이라고 명기돼 있다. 미국과 한편이 됐기에 한국이 민주 국가로 살아남았고, 오늘날 이 정도의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 반대로 중국은 북한의 동맹이다. 아무리 동족이지만 북한은 현재로선 우리의 안보를 가장 위협하는 주적(主敵)이다. 북-중 동맹조약 2조는 “체약 일방이… 전쟁 상태에 처하면 체약 상대국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돼 있다. 쉽게 말해 중국은 우리의 적과 같은 편으로, 적진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중국에 북한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다.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된 나라로 본다. 한국은 자국 국익에 따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이익 관계국이다. 이러니 한국이 죽었다 깨나도 중국은 북한 편일 수밖에 없다.

셋째, 중국은 패권국가의 조건인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 자격 미달이다. 그러기에 주변국은 중국 세력권에 편입되는 순간부터 굴종의 길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중국이 한국을 이만큼이나마 대접하는 것도 미국과 동맹이란 점 때문이란 걸 간과해선 안 된다.

넷째, 가장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이유. 미국 편에서 떨려 나는 순간 한국엔 걷잡을 수 없는 안보적 경제적 재앙이 닥칠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상정해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미국 편에 서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외교를 모르는 우리의 위정자들은 때로 낭만적 환상에 사로잡혀, 때로 80년대 운동권적 반미관(反美觀)에서 헤어나지 못해 미국과 중국이 마치 두 개의 선택지라도 되는 듯 착각해 왔다. 그러면서 중간자(中間者)라도 된 듯, 미중 사이를 넘나들다 동맹인 미국의 신뢰마저 잃어 이제는 미국도 중국도 모두 잃을지 모를 암울한 처지로 빠져든 것이다.

물론 미중이 화웨이 사태로 민감해진 터에 미국 편임을 떠들어 일부러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제부터라도 한미동맹은 중국이 도저히 흔들 수 없는 국가적 원칙임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거친 보복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감내해야만 한다. 우리가 달라지지 않는 한, 중국은 앞으로도 계속 흔들어댈 것이다. 남이 흔든다고 흔들리는 나라는 결국 치욕의 길을 걷게 돼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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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줏대없이 강대국 눈치나 보면 무시당하다 죽는다

중앙일보 2019.06.17. 00:07

사드 보복·철강 쿼터 명백한 잘못
주권국가로서 미·중에 따졌어야
화웨이 사태 .. 정부·기업 머리 맞대
논리 제시해야 동맹·협력 지킨다
이하경 주필
미국이냐, 중국이냐. 마침내 한국이 결정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했다. 미국은 한국이 화웨이 통신장비를 쓸 경우 군사·안보 정보공유를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한·미 동맹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중국도 삼성·SK하이닉스에 미국 정부의 요구에 따르지 말라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경제와 안보의 팔다리가 찢겨나가는 거열형(車裂刑)이 집행되고 있다.


줏대도, 전략도 없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얄팍하게 처신해 온 자업자득의 비참한 결과다. 살아남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우리의 판단과 논리를 당당하게 내놓는 것이다. 이런 결기가 없으면 이놈 저놈에게 무시당하다 결국엔 죽는다. 핵심은 과연 화웨이 통신장비를 수입해 사용할 경우 민감한 정보가 백도어(원격조종)에 의한 해킹으로 중국에 흘러가는지 여부다. 정부는 해당 기업에만 맡기지 말고, 직접 나서서 함께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미국의 주장이 맞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오면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중국이 보복하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면 된다. 해킹 근거가 없고, 미국의 패권경쟁 차원의 중국 압박 행위로 판명되면 “화웨이와 계속 거래하겠다”고 해야 한다.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두 강대국의 압력에 버티려면 국제 규범과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판단을 내려 한국이 원칙 있는 나라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국은 두 강대국을 상대로 당당한 목소리를 낼 기회를 날린 아픔이 있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대했을 때 “동맹국 미국이 북핵 위협으로부터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하겠다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언명했어야 했다. 보복 차원에서 유커들의 한국행을 절반으로 줄였을 때는 WTO에 제소했어야 했다. ‘세기의 통상 법정’이 열렸다면 중국의 못된 버릇을 고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 눈치를 보다 주권국가로서의 최소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 동맹국 미국은 우리를 불신했고, 중국은 대놓고 무시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에 대해 추가 관세 25% 대신 70% 쿼터(수출 물량 제한) 적용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는 WTO 세이프가드협정 11조가 금지하는 수출자율규제에 해당한다. 미국에 “국제 룰에 어긋나는 요구를 거부한다”고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만일 우리가 중국의 사드 보복, 미국의 철강 쿼터 적용 요구에 당당히 맞섰더라면 원칙과 일관성이 있는 나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나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달라져야 동맹과 협력을 모두 지킬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핵심국가인 독일은 미국과 가깝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에 가세했다. 외교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을 비난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론 러시아와 끈끈하다. 제재 대상국인데도 5000개가 넘는 독일 기업이 러시아에 들어가 있다. 대러 교역규모는 중국에 이어 2위다. 원칙을 지켜 할 말을 해야 실리도 얻을 수 있다.


러·독 협력의 핵심 인물은 슈뢰더 전 총리다. 우윤근 전 러시아 대사는 지난해 베를린에서 열린 한국인 김소연씨와 슈뢰더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정도로 정도로 친한 사이다. 슈뢰더가 우윤근에게 들려준 양국 협력의 비결을 소개한다.

“독일은 2차세계대전 때 소련과 처절하게 싸웠다. 우리가 소련을 얼마나 연구했겠는가. 그런데도 군사전략에만 치우치다 보니 실은 제대로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대화했다. 그래서 동·서독이 통일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제재 중에도 교역을 많이 하는 이유다.” 상대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끊임없는 대화가 협력의 비결이었던 것이다.


슈뢰더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9년 지기다. 푸틴은 KGB 동독 지부가 있는 드레스덴에서 5년간 근무했다. 릴케의 시를 암송할 정도로 독일어에 유창하다. 두 사람은 푸틴 별장에서 독일어로 말하면서 술을 마신 적도 있다. 메르켈총리는 푸틴에게 종종 독일 맥주를 보낸다. 정권이 바뀌면 기존 정책도, 인맥도 망각하는 한국과는 다르다.


우윤근은 러시아통인 이석배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를 후임으로 추천했다. 5공 때 문공부 장관을 지낸 고(故) 이웅희씨가 부친이다. “전두환 앞잡이의 아들이고, 박근혜가 총영사로 임명한 사람을 왜 중용하느냐”는 반대 의견이 청와대로 전달됐다. 우윤근은 “내가 능력을 보증한다. 정치인 대사의 후임으로는 전문가가 적임이다”고 설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원내대표 출신인 우윤근의 손을 들어줬다.


화웨이 사태는 한국 경제와 안보의 동시 위기다. 호랑이 굴에서 빠져나오려면 정부가 일관된 원칙이라는 칼을 빼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이든, ‘전두환 앞잡이의 아들’이든 유능한 일꾼이 차고 넘치게 해야 한다.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하나로 뭉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