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서울대 의대생들에게 '창업'을 가르치다

바람아님 2019. 9. 3. 11:57

(조선일보 2019.09.03 박유연 기자)


- 김홍일 은행권청년창업재단 상임이사

본과 2학년 20명이 수업에 참가… 연세대 문과대에도 곧 강의 개설
"어려서 창업한 젊은이들 삶 치열… 586 꼰대들 주도권 넘겨도 될 정도"


매주 화요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 의대 연건캠퍼스에선 의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창업 수업이 열린다.

차기철 인바디 대표,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최용준 룰루랩 대표 등 벤처인이 강의를 하고, 스타트업 모의 투자 등

실전 수업도 한다. 서울대 의대 본과 2학년에 재학 중인 20명이 수업에 참여한다.


스타트업계는 서울대 의대의 창업 강의를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한다.

수년째 커지는 창업 열기가 사회 각계를 넘어 가장 보수적이라는 의학계까지 침투한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이미 의사 출신 창업자가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모바일 금융 서비스 토스(toss)의 이승건 대표는 치과의사 출신이다.


김홍일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상임이사

김홍일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상임이사는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재단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서울대 의대의 창업 강의는 사회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의학계까지 창업 열기가 확산됐다는 점에서

스타트업계의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힘이 있지만 혁신 동력이 부족한 기성 집단과, 새롭지만 세련되지 못한

스타트업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서울대 의대에 창업 강의를 처음 제안한 건 김홍일(53) 은행권청년창업재단 상임이사 겸 디캠프(D.CAMP) 센터장이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은 18개 은행과 금융회사가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8450억원을 출연해 만든 재단이다. 스타트업

지원 실무는 재단 사무국인 디캠프가 맡고 있다. 김홍일 상임이사는 2018년 1월부터 재단 상임이사 겸 센터장을 맡고 있다.


김 상임이사는 "우리 사회는 기득권 집단과 도전하는 집단으로 양분된다"며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대표적인 도전하는 집단"이라고 했다.

기득권 집단은 힘이 있지만 혁신 동력이 부족하다. 도전하는 집단은 새롭지만 세련되지 못하다.

그는 "두 집단이 섞여 교류할 수 있으면 각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며

"답답한 한국 경제의 돌파구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상임이사는 서울대 의대 강의가 교류의 중요한 창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작년 상임이사 취임 후부터 꾸준히 금융계·학계·산업계 등에 스타트업을 소개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며

"서울대 의대는 학술대회 후원으로 연이 닿아 논의하다 창업 강의가 실현됐다"고 했다.

디캠프는 서울대 의대 창업 강좌 커리큘럼을 관리하면서 다른 대학으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곧 연세대 문과대에 창업 강의가 개설될 예정이다.


김 상임이사는 원래 '기득권 집단' 출신이다. 산업은행 출신으로 홍콩에서 10년 넘게 ABN암로, 리먼브러더스, 노무라 등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일했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와 IBK자산운용 부사장, 아이디어브릿지 자산운용 대표,

우체국금융개발원장을 거쳐 작년 처음 스타트업계에 발을 디뎠다. 그는 처음 스타트업계 사람을 만났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간 보지 못했던 세상의 다른 반대편을 처음 본 것이다. "한 면만 보고 살아왔던 겁니다."


스타트업계 젊은 세대는 창의성뿐 아니라 경험에서도 기성세대에 밀리지 않는다.

김 상임이사는 "어려서 창업한 젊은이들은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압축적인 경험을 했다"며

"나 같은 586세대들이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이들에게 넘겨도 될 정도"라고 했다.

그는 "50대 이상이 경험을 내세우면서 가르치려 들기보다 오히려 배워야 한다'며

"그래야 '꼰대'에서 벗어나 새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상임이사는 앞으로 기성세대와 도전하는 젊은이 사이 가교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산업화 시대를 지난 디지털 경제의 주역은 40대 이하 젊은 층"이라며

"시너지가 강화될수록 경제가 활력을 찾으면서 우리 사회 일자리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디캠프는 2012년 설립 후 1900여개 스타트업에 직·간접 투자했다.

관련한 고용 창출 효과는 1만9000명 내외로 추산된다.

김 상임이사는 "지속적인 투자와 기업 발굴로 고용 창출 효과를 높여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