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9.05 방현철 경제부 차장)
방현철 경제부 차장
지난 8월 5일 중국 위안화 환율이 '1달러=7위안' 선을 돌파했다. 중국에선 '破7(포치)'라 부른다.
그간 중국은 미·중 무역 전쟁에 쓸 카드로 '포치'를 들고 있었다.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려 중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가만있지 않았다. 곧바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달러와 위안화 환율을 두고 피 터지게 싸우는 '환율 전쟁'이 터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리고 한 달 가까이 지났다. 아직 미·중 환율 전쟁이라 부를 일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가 원치 않는 위안화 약세가 계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환율 전쟁에서 이길 강력한 무기를 썼다가는
달러 위상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달러 딜레마'가 트럼프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 전쟁에선 '관세'란 무소불위의 무기가 있었다. 하지만 환율 전쟁에선 자유자재로 쓸 무기가 마땅치 않다.
트럼프가 앞으로 꺼낼 수 있는 무기는 세 가지 정도다.
우선 클린턴 정부 이후 25년 가까이 미국이 견지한 '강(强)달러 정책'의 포기를 공식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트럼프가 족집게 타격을 원하는 위안화만 때리는 싸움이 아니라 유로, 엔화 등 모든 통화 대비 달러를
약세로 만들게 된다. 더 나아가 달러의 글로벌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
앞으로 달러 가치가 떨어질 게 분명하다면 달러를 계속 들고 있을 이유가 점차 사라진다.
둘째, 외환 시장에서 직접 달러를 팔고 위안화를 사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는 실탄이 많지 않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미 재무부의 가용 자금을 940억달러쯤으로 추정했다.
하루 5조달러(약 6000조원)나 거래되는 글로벌 시장에선 '새 발의 피'다. '연준 금고를 열어 동참해 달라'고 할 순 있다.
그러나 파월 연준 의장과 냉전 중이라 쉽지 않다.
'달러 지킴이'인 연준을 힘으로 눌렀다간 시장에 혼란이 올까도 두렵다.
셋째, 우군(友軍)을 부르는 것이다. 1985년 '달러 약세, 엔화 강세'를 불러온 플라자 합의 땐 G5(선진 5개국)의 협조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G7 정상회담에서 봤듯이 트럼프의 '나 혼자 잘났다'는 태도에 다른 선진국 정상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이런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재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위안화 때리기'를 감행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함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우리 경제가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 국제 투자자들은 썰물같이 빠져나갈 수 있다.
국가 역량을 실물 경기 회복에 맞춰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우리 경제에 디플레이션 우려는 커지는데 우리 정부는 이를 감당할 능력과 의지가 없는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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