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6일 기준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내렸다. 이는 2016∼2017년과 같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미국과 이자율 격차에 의한 자본 유출이나 부동산으로의 자금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 영향 등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이후 석 달 만에 다시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이는 ‘R(경기침체)의 공포’와 ‘D(마이너스 물가)의 공포’로 대변되는 현 경제 상황이 우리에게 그만큼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한은도 직시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글로벌 무역전쟁, 중동의 정치 불안,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합의 임박 등으로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에 사로잡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5일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 7월 3.2%에서 3%로 낮춰 전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9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낮췄고, IMF도 지난 4월 2.6% 전망에서 이달에는 2.0%로 대폭 낮췄다. 한은도 지난 7월 2.2%로 전망한 이후 다시 낮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 등 주요 국제투자은행들이 오히려 1%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저성장·저물가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의 암울함은 한국 경제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표적인 경제지표들인 경기동행 및 선행지수, 수출, 설비투자 관련 지수 등이 모두 떨어지고 있고, 소비자물가지수도 수개월째 0%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인식은 전혀 다르다. 이들은 어려운 대외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 근거로, 청와대와 정부는 한국은 이른바 ‘30-50클럽’(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이상)에서 경제성장률이 미국 다음으로 최상위권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30-50클럽은 미국과 영국 등 7개국에 불과하기도 하지만, 미국은 201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한국의 약 13배에 이르는 대국이다. 이들 국가와 같은 성장률로 간다면 우리는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 더 중요한 점은, 세계은행(WB) 자료를 보면 정부의 해석이 얼마나 자가당착이고 유체이탈 식인지를 알 수 있다. 1980년 이후 한국이 이들 7개국 중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한 연도는 경제위기(1980, 1998, 2009년) 연도를 제외하면 2003년 2위(영국 다음), 2015년과 2018년 2위(미국 다음)로 3개년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냉철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선방하고 있다거나 최근 경기 상황이 국내 정책 탓이 아니라 모두 대외 여건 탓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장 30∼40대 시장 일자리가 줄어들고, 건설투자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또, 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지난 2분기 해외직접투자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은도 금리 인하를 발표하면서 경제 상황에 따라 다시 인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 않은가.
정부는 경제학자들과 대화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경제 상황이나 경제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아직 한국이 경제위기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정부가 저성장·저물가 기조에 대응하는 적절한 정책을 적절히 시행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危機)에 직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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