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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586세대 高임금 정당한가?

바람아님 2019. 10. 24. 07:28

(조선일보 2019.10.24 김홍수 논설위원)


청·장년 임금 격차 세계 최대… 생산성과 무관한 호봉제 탓
청년 세대에 진 빚 갚으려면 586세대, 임금 개혁 앞장서야


김홍수 논설위원홍수 논설위원

필자는 5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이다.

1990년대 초 직장에 들어와 30년 가까이 근무했다. 내 연봉은 신입 기자의 2배를 훨씬 웃돈다.

나는 신입 기자 곱절 수준의 생산성을 갖고 있나? 아닌 것 같다.

그럼 나는 부당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건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생산성 기준으로 보면 부당하지만, 젊은 시절 덜 받은 임금을 나이 들어 받고 있다고 보면

정당한 임금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쇠는 연공급(年功給) 성격의 임금 체계에 있다.

매년 호봉이 1~2단계씩 오르는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급 임금 체계는 생산성이 높은 청년 시절엔 임금을 덜 받고,

이때 저축했던 임금을 나이가 든 후 받는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호봉제는 1970년대에 정착됐다. 일본 제도를 베꼈다.

일본에선 1900년대 초 러일전쟁을 치른 후 인력 부족 사태를 겪었다. 기업들이 숙련 인력을 지키기 위해 종신고용과

함께 호봉제를 도입했다. 고도 성장기가 끝나고 일본은 변했다.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이후 자동 승급이 없는

성과주의 임금 체계로 전환했다.

직무 능력, 직무 가치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직능급·직무급을 광범위하게 채택하고 있다.


한국에선 호봉제가 여전히 대세다. 전체 기업의 80%(300인 이상 기업 기준)가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장기 근속자와 신참 직원 간 임금 격차가 기형적이다.

30년 이상 근속자 임금이 1년 미만 근속자의 4.4배(2016년 기준)에 이른다.

유럽연합 평균치(1.62배)의 3배에 달한다. 호봉제 원조 국가인 일본(2.41배)보다도 훨씬 높다.

하지만 같은 직장 55세 이상 근로자의 생산성은 34세 이하 근로자의 60% 수준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직무급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노동계가 반발하자 손을 놓아 버렸다.

호봉제 핵심 지지 기반은 대기업 귀족 노조이고, 최대 수혜 계층은 586세대이다.

현대차 노조원 중 48%가 억대 연봉을 누리는 50대들이다. 호봉제는 생산성과 보상 간 불일치로 인해 중·장년 근로자의

조기 퇴출, 정규직 신규 채용 기피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호봉제만 없애도 청년 실업과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를 줄이고, 사오정(실제 정년은 45세), 오륙도(56세에 직장 다니면 도둑놈)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대통령 직속 노사정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임금 체계 개편 문제를 다시 의제로 올려야 한다.

그렇다고 노사정 대타협이 나올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단군 이래 최고 행운 세대라는 586세대가 임금 기득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개별 기업 단위에서 임금 총액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586 근로자 임금은 동결하거나 깎고, 대신 청년·비정규직 임금을 대폭 올려주는 노사 협상을

시도하면 어떨까. 정부는 개별 기업의 임금 체계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유인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임금을 양보한 586 근로자들에게 연말정산 때 세금 환급액을 늘려주거나 퇴직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폭 늘려주면 어떨까. 나아가 586세대의 가장 큰 지출 항목인 사교육비·주거비를 덜어주는 교육·주택 정책까지

선보이면 586세대의 임금 양보가 더 용이해질 수 있다.


호봉제 폐지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직장 내에서 구현하는 노동 개혁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자동차 공장에서 왼쪽 바퀴를 조립하는 50대 근로자와 오른쪽 바퀴를 조립하는 20대 청년이 같은 임금을 받아야

공정하고, 정의에 부합하지 않나. 다른 건 몰라도 호봉제 폐지라도 해놓고 사라지는 게 586세대의 역사적 책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