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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 경제, 일본화 우려...'R공포' 보다 무서운 'J공포'

바람아님 2019. 10. 23. 09:19

[중앙일보] 2019.10.22 17:15


“선진국이 ‘일본화(Japanification)’되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서양 경제학자·정책당국자는 일본의 경험에서 저성장·저금리·저물가 피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나.”
 

미국·유럽 경기부양 불구 국채금리 떨어지는 악순환
FT "미국, 일본 '반면교사' 삼다가 이제 그대로 답습"
그린스펀 "미국 마이너스 금리 시대는 피할수 없어"
전 BOJ총재 "금리인하로 생산성 저하는 큰 실수"
유럽·미국·중국 동시에 고령화…유례없는 불황 전조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전 일본은행(BOJ) 총재는 21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영문판 아시안리뷰 기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최고경영자(CEO)는 7일 “유럽 정부가 강력한 재정 부양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25년 전 일본처럼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등도 세계 경제가 과거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에 빠지는 상황을 경고하고 나섰다.   
          
각국 중앙은행 정책금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각국 중앙은행 정책금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유럽이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펼치지만, 국채 금리가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졌던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만 해도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은 수년간 일본 경제를 연구하며 반면교사로 삼았지만, 이제 미국·유럽은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며 “1990년대 자산 거품 붕괴에 시달리던 일본 정부가 깊은 고민 없이 금리를 내린 것처럼 Fed와 유럽중앙은행(ECB)도 금리 인하에 여념이 없다”고 보도했다.  
 
2014년 마이너스 금리에 접어든 유럽은 이미 상당한 일본화 조짐을 보이지만, 미국은 일본보다 젊은 인구가 많고, 2%대 성장률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일본화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데다 Fed가 지난 7월부터 다시 금리 인하 기조로 돌아선 만큼, 미국조차도 일본화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일본·유럽에 이어 미국까지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여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인구 고령화로 채권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금리는 더욱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화의 주요 증상은 마이너스 금리 채권의 급증이다.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전 세계 마이너스 금리 채권 규모는 16조 달러(1경 8741조원)를 웃도는 수준으로, 이중 대다수는 유럽에서 발행됐다.  
           
65세 이상 노인 부양 비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65세 이상 노인 부양 비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채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되고 있고, 독일은 장·단기 국채 금리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일본은 아직도 저금리 또는 마이너스 금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는 중독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경고했다.
 
시라카와 전 BOJ 총재는 “금리 인하 등 통화 완화 정책은 효율적이지 않은 기업을 살려두기 때문에 국가 평균 생산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는다”며 “일본 정부의 가장 큰 실수는 당시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지 않은 점”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장기 불황의 원인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주장이 여전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일본 전체 인구 중 노동 가능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1년 최대치를 기록한 뒤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이 시기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맞물렸다.  
 
니시무라 기요히코(西村淸彦) 전 BOJ 부총재는 “일본은 단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고령화와 줄퇴직을 경험한 국가일 뿐, 저물가·저금리 기조가 일본에 국한된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유럽·미국의 상황은 더 비관적이다.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蔵) 전 일본 경제재정정책담당 장관은 “일본이 1990~2000년대 저성장을 겪을 때만 해도 일본을 제외한 세계 각국의 경제가 고성장을 지속할 때였기 때문에 해외 투자 기회가 많았다”며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경제국이 동시다발적으로 저성장에 돌입할 경우 과거 일본 때와는 차원이 다른 깊은 불황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