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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한국서 1조원 들인 금강산관광 “싹 들어내라”/[칼럼] 김정은은 어떻게 동북아의 조커가 됐나

바람아님 2019. 10. 24. 09:04

김정은, 한국서 1조원 들인 금강산관광 “싹 들어내라”

[중앙일보] 2019.10.23 17:46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을 찾아 “남측서 지은 시설물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고 북한 관영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 위원장이 인민들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종합적인 국제관광문화지구로 꾸릴 구상을 갖고 금강산 지구를 현지지도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지난 16일(보도일 기준) 백두산에서 백마를 타며 중대 결심을 예고했던 김 위원장이 금강산 시설 철거 선언으로 한·미에 제재 해제의 통첩장을 던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①1조원대 대북 투자에 "들어내라" = 김 위원장은 “(남측이) 금강산에 꾸려 놓은 시설들이 민족성을 찾아볼 수 없는 범벅 식이고, 피해지역의 가설막이나 격리병동처럼 들어 앉았다”며 “그것마저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또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돼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 잘못된 인식”이라고도 했다. 현대그룹이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금강산 지역을 50년간 임차해 관광사업을 하기로 합의했던 게 잘못이라는 지시다. 시설을 뜯어내고 향후 북한이 직접 관광사업을 주도하겠다는 예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장전항 인근의 해상호텔인 '호텔 해금강' 앞에서 관계자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장전항 인근의 해상호텔인 '호텔 해금강' 앞에서 관계자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통일부와 현대아산에 따르면 정부와 현대그룹(현대아산)은 1998년 11월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이래 9947억 3000여만원 가량을 투입했다. 남측 관광객의 숙박시설 및 부두, 도로 등 편의시설 건설에 현대 측이 3억 2000만 달러(약 3751억 7000만원)를 투자했고, 정부는 경영난을 겪은 현대를 지원하기 위해 지분 인수 방식 등으로 48억 6000만원을 보탰다. 정부는 또 이산가족 상봉면회소를 금강산 지구에 건설하는데 550억원을 지출하기도 했다. 여기에 50년 임차비(9억4200만 달러, 약 1조 1045억원) 중 관광대가 방식으로 5597억원을 북한에 건넸다. 하지만 이같은 투자는 김 위원장의 '사망 선고'로 결국 북한에 넘어가거나 공중 분해되게 됐다.  
          
금강산의 장전항 전경. 큰 사진 왼쪽 윗부분은 북한 해군 기지이고, 오른쪽이 관광객이 이용하던 부두다. [사진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금강산의 장전항 전경. 큰 사진 왼쪽 윗부분은 북한 해군 기지이고, 오른쪽이 관광객이 이용하던 부두다. [사진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①속내는 트럼프 향한 제재 해제 요구=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 이후 중단됐던 금강산 관광은 대표적인 대북 제재 대상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관광은 대북 제재에서 예외이지만 북한과 경제 협력을 하는 것은 금지돼 있기 때문에 경협 사업인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건 제재 위반”이라고 말했다. 2017년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75호는 북한과의 합작 사업 설립ㆍ유지ㆍ운영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 남북 합작은 불가하다. 2375호는 북한 노동자 고용도 금지했다. 즉 모든 유엔 회원국 국민과 기업은 북한에 상업적 목적의 투자를 하거나 북한 국적자를 채용할 수 없다.  
  
이런 데도 김 위원장이 현장을 직접 찾아 관광 종료를 언급한 건 한국과 미국의 독자 제재 및 안보리 제재 등 ‘삼중 제재망’을 한꺼번에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김 위원장의 금강산 현지지도는 한국에는 ‘더 이상 남북 경협에 기대지 않겠다’는 메시지인 동시에 미국에는 ‘외교적 관여의 문을 닫기 전에 제재 문제에서 유연한 입장을 들고 오라’고 양보를 요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금강산 독자 개발 선언은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한 예고편 성격도 있다. 김 위원장이 직접 연말을 비핵화 협상의 시한으로 못 박은 상황에서 미국이 제재 해제를 하지 않을 경우 판을 뒤엎고 '독자적인 길'을 갈 것이라는 압박이다. 북한은 이미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떠밀리고 있다”(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8월 31일 담화)는 식으로 핵 실험 및 장거리미사일 시험 재개를 위협했다.
 
금강산관광 시작부터 철거 지시까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금강산관광 시작부터 철거 지시까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 평양출판사가 2013년 발간한 도서 『김정일 장군의 통일일화』

북한 평양출판사가 2013년 발간한 도서 『김정일 장군의 통일일화』

        
③김정은, 아버지의 결정 뒤집기 = 북한이 공식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금강산 관광과 관련해 '첫 사랑'을 언급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5년 7월 금강산에서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가족을 만나 “사람에게 있어서 첫사랑이 중요하다. 우리는 북남 관계에서 당국보다 훨씬 앞서 현대와 첫사랑을 시작하였다”(『김정일 장군의 통일일화』)며 금강산 관광에 의미를 부여했다. 금강산 관광은 이처럼 김정일 위원장의 결정이었는데도 김 위원장은 선대의 권위를 훼손했다는 정치적 부담을 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돼 흠이 났다”며 “국력이 여릴(약할)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지목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선임자들’이 아버지인지는 불분명하다. 통일부 내부와 북한 전문가들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을 보좌했던 당시의 실무 책임자들을 지칭한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전례없는 '선임자들' 비판은 선대 정책과의 단절로 비치는 것을 각오하고 내린 결정이란 분석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철거 지시한 금강산 남측 시설 13곳.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김정은 위원장이 철거 지시한 금강산 남측 시설 13곳.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④한·미 갈등 뇌관 될 수도= 김 위원장은 남측과의 금강산관광 단절을 선언하면서도 “남측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하라”고 지시했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북측이 요청을 할 경우에 우리 국민의 재산권 보호 그리고 남북합의의 정신, 또 금강산 관광 재개와 활성화 차원에서 언제든지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3월부터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제외한 일체의 직접 접촉을 삼가고 있는데, 금강산 관광 남측 시설물의 철거와 관련해 접촉의 장이 마련될 가능성이 생겼다. 그러나 남북이 금강산관광 문제로 협상에 나설 경우 북한은 '관광 재개'와 '남측 철수' 중 하나를 택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미국은 관광 재개는 북한의 비핵화와 속도를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이때문에 금강산관광 문제가 다시 한·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용수ㆍ유지혜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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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정은은 어떻게 동북아의 조커가 됐나

노컷뉴스 2019.10.23. 11:09
      
[조중의 칼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 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사진=연합뉴스)
불과 1년 8개월. 이 짧은 기간에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동북아의 조커이자 패자(霸者)로 떠오른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싫든 좋든 실제이고 현실이 됐다.

2018년 2월. 김정은 등장 이후 꽉 막혔던 남북 관계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문이 열렸다.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 이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3차례의 정상회담을 열었다. 미국의 트럼프도 김정은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열었다.


같은 기간 동북아에서는 전례 없는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면서 경제 전쟁을 일으켰다.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라는 강수를 뒀다. 미국과 중국은 관세보복을 신호탄으로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동북아의 정치지형과 힘의 균형이 묘하게 바뀌었다. 한미일 동맹에 균열이 생긴 반면 북중러 동맹은 한층 공고해졌다.


한미일 동맹은 미국이 주도하는 불평등 관계다. 한국과 일본은 핵 전술을 구사할 수 없다.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와 군사지원 없이는 북한과 대적할 수 없는 종속된 동맹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며 겁박하고 있다.


반면 중국의 시진핑은 평양을 국빈 방문하며 혈맹관계를 돈독히 하고 북중 고위급 군사회담을 열었다. 러시아 푸틴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으로 밀월관계를 확인하고 북러 군사회담을 열었다. 북중러 동맹의 확고부동한 단일대오를 구축한 것이다. 무엇보다 북중러 동맹은 각국이 핵 전술을 보유한 대등한 관계라는 점이다.


김정은은 1년 8개월 사이에 동북아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건 속에 예상을 뛰어넘는 패자(霸者)로 급부상했다. 그의 셈법은 흔들리는 한미일 동맹과 맞물려 위력을 더하고 있다. 김정은이 쓸 수 있는 패도 예상 밖으로 많아졌고 위력도 강해졌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연이은 탄도 미사일 발사에도 묵인하고 있다. 트럼프의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칫 대북정책의 실패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문재인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 것을 제안하고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평화경제 구상을 밝혔지만 김정은은 비난과 조롱으로 대꾸했다. 일본의 아베는 아예 김정은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신세다.


그뿐이 아니다. 문재인은 평화경제를 말하지만 김정은은 반제(反帝)평화를 말하고 있다. 문재인의 평화경제는 북한의 공감 없이는 불가능한 비전이다. 김정은의 반제평화는 남한의 협조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한 목표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반제평화전략을 위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했고 이제 그 무기를 담보로 미국과 담판을 벌이고 있다.


지난 5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에서 북한이 제시한 북미 대화의 선결조건만 보아도 확실하다. 북이 내세운 대화 재개의 조건은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금지 그리고 제재완화 약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한국의 총선거. 1년 후에 치러질 미국의 대선은 김정은에게는 꽃놀이패다. 한국의 총선과 미국의 대선이 김정은에 의해 유리해질 수도 있고 불리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결심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김정은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고, 반대로 전쟁을 불사할 수도 있다. 둘 다 대한민국에는 치명적이다.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금지는 주한미군 철수와 직결된다. 전쟁은 자멸하는 길이다. 문재인 역시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의 승리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다. 북미협상결과와 김정은의 마음먹기에 따라 총선에서의 희비가 엇갈릴 수도 있다.


우리는 어쩌다가 백마 타고 백두산에 오른 김정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일까. 금강산을 방문해 남한 시설물을 쓸어내라고 지시한 김정은의 진의를 해석하느라 급급하게 됐는가. 동북아의 조커이자 패자(霸者)가 된 김정은의 손에 들린 패를 읽어야 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의 셈법도 달라져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CBS노컷뉴스 조중의 기자] jijo@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