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군 요임금은 태평성세를 이룬 후 아들 단주가 아니라 현명한 은자 허유에게 선양하려 했다. "태양이 떴는데도 횃불을 끄지 않는 것은 헛된 일"이라며 천하를 맡아달라 청했건만, 허유는 "두더지는 황하의 물을 마시지만 배만 차면 그것으로 족합니다"라고 답했다. 소부는 한술 더 떴다. 더러운 얘기를 들었다며 강물에 귀를 씻는 허유를 지나쳐 상류로 올라가며 던진 말. "자네가 귀 씻은 구정물을 소에게 먹일 수 있겠는가?"
요나라가 아무리 태평성대인들 정치는 여전히 썩었다는 걸 방증하는 이야기다. 고산(孤山) 윤선도는 시조 '만흥(漫興)'에서 "생각해보니 소부와 허유가 약았더라"고 읊었다. 임천한흥(林泉閑興), 즉 자연에서 누리는 한가로움과 즐거움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같은 삼공(三公)은 물론 만승(萬乘), 즉 임금 자리보다 낫다는 걸 알아차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한 이가 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뭇 다른 논리를 폈다. "정치판이 더럽다고 훌륭한 인재들이 외면하면 정치는 점점 더 망가질 뿐이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면 정치에 뛰어들라. 누가 뭐래도 우리 삶에 정치보다 중한 것은 없다." 놀랍게도 이 무렵 그는 가까스로 탄핵을 모면한 처지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우리 정치권이 청년 후보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총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우리 세대의 뜻있는 이들은 허유와 소부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에코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클린턴의 소명을 받들기 바란다. 어쨌든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었으니까.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최소 수량(critical mass)'이 필요하다. 청년 국회의원 대여섯이 더 뽑혔다고 정치판이 변할 리 없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입성해야 한다. "청년이여, 정치에 입문하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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