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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45] 글 쓰는 보람

바람아님 2019. 10. 30. 04:51
조선일보 2019.10.29. 03:1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지난주 이 칼럼에 나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홀로 남은 흰고래를 풀어달라는 취지의 글을 실었다. 그룹 회장님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신 마당에 그 불쌍한 동물이 무슨 죽을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더 늦기 전에 제발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틀 만에 방류 결정이 내려졌다. 개인적으로 연락받은 게 없어 내 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말 몇 마디로 천냥 빚이라도 갚은 듯싶어 뛸 듯이 기뻤다.


1999년 4월 이미 '물 건너갔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나는 김대중 대통령께 동강댐 건설을 멈춰 달라는 시론을 썼다. "환경은 역사적 유물과 달리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잠시 빌려 쓴 후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님께 손자와 함께 동강에 한번 다녀오실 것을 권유한다"고 썼는데 첫 삽 뜰 준비까지 마친 건설 계획이 전면 백지화되었다. 이 뜻밖의 쾌거로 나는 학자의 삶과 더불어 환경운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신문에 글 몇 줄 쓴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막아보려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끝내 그 거대한 '삽질'로부터 흰수마자와 꼬마물떼새를 구해내지 못했다. 마치 나의 귀국을 기다렸다는 듯 시작된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계획은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길 잃은 미아 신세이며, 통째로 보전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DMZ는 하릴없이 야금야금 무너져 내린다.


어느덧 논객으로 살아온 나날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어떤 이는 논객 행위를 '지적질'이라며 비아냥거린다. 안 그래도 요즘 지적질하기가 예전 같지 않다. 내 시위를 떠난 화살이 언제 어떻게 되돌아와 내 심장을 후벼 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롯데월드처럼 나의 막무가내 지적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선진 기업이 있어 글 쓰는 보람이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